쏘여봐야 그 무서움을 안다
한여름 더위가 한창일 때 여름 텃밭에서는 오이도 토마토도 가지도 고추도 날마다 따야 할 만큼 열매를 내준다. 허공엔 잠자리가 유유히 날고 나비도 너울너울 쌍쌍이 서로를 희롱하듯 춤을 추는데, 한낮의 정적을 깨며 갑자기 왱 소리를 내며 머리 위로 날아가는 녀석들이 있다.
‘아따 고것 참 요란하게 날아가네~‘
혼잣말하며 태평하게 하던 일 계속한다.
무서운지 모르면 태평할 수 있다. 그해 여름 영지 텃밭에 유난스럽게 말벌의 비행 소음이 요란했지만 무서운 줄 모르는 맹한 머슴은 ‘안 건들면 안 쏘겠지’ 하는 평화주의자였다.
과일을 담았던 상자가 튼튼해 보여 가을에 쓸 요량으로 창고 출입구 옆 물건을 쌓아두는 나무 벤치 위에 놔두었다. 종이 박스 근처에 말벌 두세 마리가 낮동안 내내 낮게 떠서 윙윙거리고 있었다. 종이 박스의 손잡이 구멍 사이로 벌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박스 옆에 농기구도 세워두고 박스 위 횃대에 걸어놓은 호미도 꺼내 쓰고 다시 걸어놓고 했지만 말벌과 마찰은 없었다. 새끼손가락 만한 커다란 벌이 지척에서 윙윙거리며 노려보는 것 같아 좀 켕기기는 하지만 개의치 않고 창고를 드나들었다.
담장을 따라 장미를 일정 간격으로 심은 마님의 의도대로 여름이면 동네에서 꽤 이쁘다고 소문난 붉은 장미 담장이 된다. 예쁜 꽃으로 동네를 장식해 주는 장미에 정성을 들이던 무더운 날 장미 가지를 감고 올라가는 박주가리 넝쿨을 걷어내려고 손을 우거진 장미가지 사이로 넣는데 갑자기 말벌 한 마리가 나타나 왼손을 쏘는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져서 그놈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몰랐다. 엄청나게 따끔한 한방이 검지 손가락에 느껴졌다. ‘아얏’하고 작업 장갑을 벗고 보니 손가락 첫째 마디에 벌에 쏘인 자국이 있다. 일단 그 자리를 피해 후퇴했다.
통증이 가시지 않고 손이 점점 붓더니 그날 저녁이 되자 손등이 터질 듯이 부어올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극심한 통증과 부기와 발적이 있지만 보통은 하루 이틀 지나면 가라앉는다는 정보가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처방이 게으른 자에겐 가장 고맙고 위안이 되는 말이다. 벌침 알레르기가 있다면 심한 쇼크 반응(아나필락시스 쇼크)으로 잘못되면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있었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혈압 저하도 없고 의식도 뚜렷했으니 심정지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통증은 점차 약해지지만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창고 옆의 윙윙대는 말벌에 신경이 쓰이고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퉁퉁 부어오른 손을 마을 선배에게 들켰다. 맘 놓고 일하려면 말벌집을 없애야 한다며 빨리 신고를 하라는 것이다.
나원 참, 내가 우리 집 말벌집 좀 없애달라고 국가기관 119에 신고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이 광복절 공휴일인지도 깜박했다. 친절한 119였다. 바로 출동하겠다며 혹시라도 섣불리 말벌집을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소방차와 함께 대원 3분이 오셨다. 요즘 주로 하는 일이 말벌집 제거하러 출동하는 일이라며 웃었다. 오늘만 우리 집이 세 번째라고 했다.
출동한 팀장께서 어디서 쏘이셨냐고 물어서 벌에 쏘였던 장미 덩굴을 가리켰다.
장미 가지와 이파리 사이를 살폈지만 말벌집이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달랐다. 펜스 밖 근처 수풀에서 주먹 만한 작은 말벌집을 찾았다. 별 무장도 없이 금방 떼어 냈다.
‘집 뒤 창고 옆에 말벌이 항상 윙윙거리는데 거기도 말벌집이 있는 것 같아요’ 했더니 셋 중 가장 젊은 씩씩한 대원이 가보자고 했다. 근처로 다가가서 살펴보더니
‘어마어마하겠네요’ 하면서 위험한 곳에서 어린애 내보내듯이 나를 바로 끌고 앞마당으로 왔다. 소방차에서 말벌 제거용 장비 꾸러미를 꺼냈다.
온몸을 감싼 하얀 방호복에 머리 전체를 덮는 보호구로 무장하고는 손에 집게 도구와 특수 살충 스프레이를 세 통이나 들고 홀로 창고로 다가갔다. 그 정도 무장이면 말벌 소굴이 아니라 뱀 소굴에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장한 대원 혼자 가서 처리하는 동안 보호장구를 입지 않은 다른 대원들과 나는 앞마당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십 분쯤 지나자 땀으로 범벅이 된 대원이 우리를 불렀다. ‘이제 와서 봐도 됩니다.’
뒷마당에 가서 보니 한바탕 치열한 소탕전이 벌어진 현장이었다. 분해된 벌집에 살충제가 뿌려졌고 거의 벌이 다 돼가는 애벌레가 벌집구멍마다 꽉 찬 채로 스프레이 세례를 받았다. 얼른 보아도 3~4센티는 될만한 수십 마리 말벌들의 사체가 여기저기 무수히 뒹굴고 있었다. 뒷마당은 말벌들의 홀로코스트 현장이었지만 애도의 심정은 없고 벌집 속에 빽빽하게 들어찬 이 애벌레들까지 다 말벌이 되어 영지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녔을 것을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장수말벌이에요! 올해 출동해서 제거한 것 중에 단연 제일 큰 말벌집이네요’ 널브러진 말벌 사체 하나를 주워 내밀며 장수말벌임을 강조했다.
‘이런 엄청난 말벌집 옆으로 어떻게 창고를 드나들고 옆에서 일을 하셨어요?’
종이 박스 안에 말벌집이 5개의 층으로 꽉 차 있었단다. 박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상자 안쪽은 거의 뜯겨 나가 너덜너덜했다. 종이 박스 안쪽의 종이를 날카롭고 억센 이빨로 거의 다 뜯어내어 벌집의 재료로 사용한 것이었다. 스마트한 장수말벌이었다.
대문 앞에 충북소방의 소방차가 다음 출동지로 가기 위해 서있는 중에 작전은 15분 만에 종결됐다. 무더운 날에 방호복을 입고 일당백의 전투를 벌였던 대원은 온몸을 땀으로 목욕을 한 상태였다. 임무 완수했으니 가겠다는 대원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어서 땀 식힐 겸 시원한 냉커피라도 한 잔씩 들고 가라고 붙들었다. 뙤약볕에 지켜만 본 나도 목이 마른 참이었다.
마침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유명 브랜드의 모카커피가 몇 병 있어서 잘됐다 싶었다.
잘 냉각된 모카커피를 마시는 동안 말벌 퇴치 제거용 스프레이가 따로 있다는 것, 말벌이 무서운 이런저런 이유도 새삼 알게 되었다. 말벌은 꿀벌과 달리 몇 번이고 침을 쏠 수 있고 공격을 시작하면 떼로 덤벼서 몇 번 쏘이게 되면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매년 평균 4~5명이 말벌에 쏘여 사망한다는 것, 땅속에 사는 땅벌은 집요해서 소방대원들도 골치 아파한다는 것, 장수말벌 몇 마리가 꿀벌 통 하나를 전멸시킬 수 있다는 것 등등 온통 벌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커피는 여러모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얻게 한다. 천천히 마셔야 하는데 대원들은 꿀꺽꿀꺽 마시고 일어섰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남았지만 배웅해야 했다.
알면 무서워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 일하다가 말벌이 한 마리만 윙 하고 지나가도 일단 대피한다. 진드기에 입술을 물려보고 장수말벌에 손가락을 쏘여봤다. 모기, 쐐기에 쏘인 것은 셀 수도 없다. 농사짓는데 왜 무장이 필요한지, 여름에도 왜 긴팔옷을 입어야 하는지 체험으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말벌집을 발견하면 주저하지 말고 믿음직한 119에 신고해야겠다 하면서도 에프킬라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말벌용 스프레이 정도는 상비해 놓아야겠다고 다짐하는데 계속 후순위로 미루고 있다. 올여름이 되기 전에 꼭 두세 통은 사다가 창고 앞에 두어야겠다.
탱자만 한 작은 말벌집도 보이는 대로 즉각 퇴치하리라. 알고 보니 말벌은 꿀벌을 위해서라도 꼭 잡아줘야겠다.
뱀다리: 영지에서 마주치는 여러 짐승과 곤충이 앙성 산문의 글감이 되었다. 고라니, 개구리, 28점 무당벌레, 딱따구리, 물까치, 칠성무당벌레, 토끼, 무당거미, 뱀, 매미, 고양이가 출연했고,
개미, 말벌, 지렁이, 꿀벌, 솔개, 잠자리, 두더지, 달팽이, 두루미, 박각시나방 등등이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들고 있는데 브런치북 연재는 30회로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연재글 목차 추가가 안되어서 알아보니 그렇단다. 30회로 마쳐야 한다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남은 주인공중에 하나를 고르면 뭘 고를까 하다 119를 출동하게 한 장수말벌을 골랐다.
앙성 산문의 나머지 글은 나의 일상에서의 사유(思惟)와 철학으로 채우고 싶다. 너도 나도 쏟아내서 흔해 빠진 개똥철학이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찾기 어렵다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