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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앙성 산문 24화

거미줄 2

관찰과 연구 메모 커닝

by 시준

거미가 허공을 가로질러 거미줄을 치는 공법은 바람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허공을 우연히 바라본 나도 호기심을 가졌으니 세상에 거미를 연구하는 박사님들이 무릇 기하(幾何)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려 4억 년 전에 출현하여 세계적으로 약 4만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600종 넘게 있는 동물집단이니 ‘거미학’이 따로 있을 만하다. 거미학과(學科)내에서도 세분하여 거미줄 재료 전공, 거미줄 축조 전공, 거미 심리 전공, 거미 미학 전공, 거미의 역사 전공 … 아무래도 유수한 대학마다 연구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느 외국 대학의 박사님이 거미줄 설치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해 놓으셨다. 거미가 허공의 두 지점 간 긴 간격의 거미줄을 설치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 공법이 있다고 한다.


Drop and Swing: 줄을 타고 내려오며 제 몸을 바람에 실어 날리면서 동시에 줄을 계속 뿜어 이동하는 기술

Bridging: 방출하는 거미줄을 약한 바람에 실어 목표하는 지점에 붙이거나 짧은 거리는 거미줄을 목표에 직접 쏘아서 이동하는 기술.*1


거미가 위 공법 중 하나로 허공에 거미줄 한 가닥을 설치(쳤다는 표현보다 근사하다) 했다면 그다음은 그 줄을 이용해서 다양하게 거미줄을 하나의 그물망으로 확대하여 설치할 수 있다. 최초의 한가닥을 설치했다는 것은 공정상 주요한 마일스톤을 달성한 것이다. 마치 현수교나 계곡의 흔들 다리 설치 공사에서 맨 처음 양쪽을 잇는 파일럿 로프(pilot rope)를 설치한 셈이다.

거미의 꽁무니에서 뽑아내는 거미 실크의 방출 속도도 놀랍다. 1초에 무려 2m 정도를 뽑아낼 수 있다고 한다.

거미의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거미줄은 고단백질이고 먹이로 재활용된다. 생각해 보면 거미줄 자체가 단백질이니 먹이가 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실수로 뽑아낸 거미줄을 거미가 다시 먹어치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미는 건축 재료 겸 도시락을 제 몸속에서 만들어 제 몸에 담고 돌아다니는 유일한 동물인 셈이다. 알면 알수록 부럽고 경이로운 동물이다.


공간에 가는 줄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가다 운수 사납게 달라붙은 곤충들을 끈끈하게 붙들어 잡는 것이 거미줄이다. 그런데 거미 자신은 어떻게 해서 거미줄에 달라붙지 않을까? 다큐멘터리 영상이 알기 쉽게 보여준다. 거미줄의 탄성과 신축성, 완충작용, 점착성 설명에 점점 몰입된다.

우선 거미의 8개 다리가 점착성에 면역이 된 다리라는 점이다. 거미줄에 닿는 다리의 털을 확대해 보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구조인 데다 털에 특별한 화학 물질이 코팅이 되어있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한다. 그 특별한 화학 물질을 연구하는 팀만 해도 셀 수 없을 거라고 한다. 모두들 비밀리에 쉬쉬하며 연구하는 것 같다. 뭐 그 비밀은 국가적 과제일 수도 있다.

거미는 거미줄 망을 우산살처럼 방사선으로 뻗는 세로줄과 세로줄 사이를 잇는 촘촘한 가로줄로 완성하는데, 끈끈한 점착성 물질은 방사선으로 뻗는 세로줄에는 없고 가로줄에만 있다. 거미는 주로 이 세로줄을 밟고 다닌다. 놀랍지 않은가! 거미의 뱃속에는 두 가지 성질의 거미줄을 만드는 기능이 있다는 점에 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거미줄 치는 순서를 보면, 그 옛날 파브르 씨가 어쩌다 곤충 들여다보시느라 넋을 잃으셨는지 알 것 같다.

거미가 바람을 이용해서 첫 번째 다리줄(bridge)을 놓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다음 다리줄의 적당한 지점에서 새롭게 줄을 이어서 Y자 형태로 세로줄을 설치한다. 첫 번째 다리줄은 두 개의 세로줄이 되는 셈이다. 점착성 없는 세로줄과 같이 점착성 없는 외곽 가로줄과 중심부 가로줄을 설치한다. 이 외곽 가로줄과 Y자 꼭짓점을 이어가며 더 많은 바큇살 세로줄을 설치한다.

세로줄 설치를 마치면 점착성 없는 세로줄과 같이 점착성 없는 공사용 가로줄을 성기게 먼저 설치한다. 공사를 위한 비계를 중간에 설치하는 셈이다. 세로줄과 그 공사용 가로줄을 타고 최단거리로 이동하며 바깥쪽에서부터 촘촘히 나선형 가로줄을 치면서 중심으로 이동한다.

중심부터 가로줄 설치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뜻밖이지만 거미 입장에서 보면 바깥쪽에서부터 나선형 가로줄을 치면서 거미줄 망의 중심부로 오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인간이 집 지을 때 큰 프레임부터 설치해서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중심까지 가로줄을 다 치면 거미는 발로 세로줄을 잡아당기거나 늘려서 거미줄 전체의 장력(tension)을 조절한다. 거미줄에 먹이가 걸렸는지를 바로 알아야 하므로 거미줄의 진동과 당기는 힘의 변화를 감지하기에 알맞게 전체적인 장력을 튜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마무리 작업이다.


허공에 쫙 펴진 저만의 포획 진지를 완성하면 그 진지의 주인인 거미는 어디에 위치하는지가 학자들의 관심 사항이 되었다.

허공에 떠서 수직에 가깝게 펼쳐진 거미줄 망 한가운데 거미가 자리 잡고 있다면 새 같은 천적의 눈에 잘 띄어 표적이 되기 쉽다. 그렇다고 그물망의 한쪽 가장자리에 치우쳐 있다면 거미줄의 반대쪽에 걸린 먹잇감에 빠르게 도달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적정 위치는 어디일까? 거미들마다의 생존 노하우이기 때문에 거미마다 대기하는 위치가 다 다르다. 아직도 연구중이리는 얘기다.

경이로운 거미는 삼차원적 허공에서 외로이 천적의 표적이 되는 숙명을 안다. 그래서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함께 해둔다.

거미줄 한쪽 구석에 만든 은신처, 가장자리로 비켜나 있지만 저만의 직통 세로줄을 설치해 놓은 대기 장소, 거미줄 한 복판에 위장용 허수아비 거미줄 뭉치를 만들어 놓기, 거미줄 중심 부근에 지그재그 띠로 자신을 노리는 천적의 주의를 분산하는 장치, 나뭇잎 조각으로 자신의 형상과 비슷한 형상물 설치 등등 참으로 다양하다. 각국의 군사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거미를 연구하고 있을 것 같다.


수거미는 암거미보다 몸집이 훨씬 작다. 무당거미 수컷의 키는 암컷의 1/3 정도다. 몸무게는 아마 1/10 정도나 될까 말까 한 데다 삐쩍 말라 볼품이 없다. 거미는 자신보다 작은 거미가 눈앞에서 움직이면 잡아먹는다. 발정 난 숫거미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종족 번식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수거미가 암거미에게 자신은 먹잇감이 아니라고 하면서 연애를 호소하는 방법은 거미 종마다 다르다고 한다.

암컷 거미가 잡은 먹이를 포식하려 집중할 때 잽싸게 달려들어 교미를 시도하는 종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잡은 먹잇감을 거미줄로 포장해서 가져와 암컷이 선물 포장을 뜯는 동안 잽싸게 시도하는 거미종이 있다. 수컷이 공포와 쾌락을 동시에 즐기게 발전한 종들이다. 이들 종의 암컷 거미는 식욕과 성욕을 동시에 유지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긴장과 공포 대신 낭만적으로 교미 문화를 발전시킨 종도 있다. 자신만의 신호용 거미줄을 암컷의 거미줄에 연결하여 독특하게 튕기면서 데이트 신호를 보내는 스마트한 종이 있고, 암컷 앞에서 귀엽게 춤추며 자신이 먹잇감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는 거미종도 있다. 거미도 신경전달 물질은 있을 것인데 인간처럼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동시에 분출되는지는 모르겠다. 그것까지 연구한 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세상은 넓으니 혹시 모를 일이다.


어떤 경우든 거미 수컷의 노력은 눈물겹다.

거사를 마치고 암컷의 식욕을 피해서 혹은 식욕이 돌아오기 전에 내빼지 못하면 그들의 연애는 비극으로 끝난다. 교미 중에 혹은 교미를 시도하는 중에 파트너인 암컷의 기분에 따라잡아 먹힐 수 있다는 공포감을 한 번의 교미 본능이 이기는 것이다. 수컷은 오직 이 한순간을 위해 여름을 살며 에너지를 비축한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라도 자신의 DNA를 남기려 애쓰도록 수컷에 프로그램이 된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수컷이 공포에 무너져 교미를 포기한다면 자연계는 무너진다. 창조주의 뜻한 바가 결코 아닐 것이다. 이걸 지켜보면 동물계에서 호모사피엔스 남성은 복 받은 줄 알고 더욱 분발해야 한다.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 처서를 넘긴 초가을은 무당거미의 짝짓기 철이다. 화려하고 우람한 암컷에 비해 작고 마르고 초라한 수컷 무당거미를 쉽게 볼 수 있는 시기이다. 암컷 거미의 생식기는 배 쪽에 있다. 수컷은 암컷에게 줄을 당겨 접근한다는 신호를 보내어 연애 의사 표시를 한다. 암컷의 반응이 없으면 수컷은 암컷의 배 쪽으로 파고들어 교미를 시도한다. 파고든다기보다 암컷이 있는 거미줄의 맞은편으로 오면 된다. 이 시기의 암컷은 대개 수컷의 접근에 허용적이고 여러 마리 수컷에 차례로 기회를 주기도 한다.


무당거미는 천적을 피해 밤에 알을 낳는다. 거미가 알 낳을 자리를 거미줄로 폭신하게 만드는 모습이 정성스럽다. 무려 세 시간 정도 걸려 알자리를 만든다고 한다. 알자리가 준비되면 30분 정도 애를 써서 한 번에 몇십 개에서 몇백 개씩 분홍색 알을 낳는다. 알을 낳고 홀쭉해진 배로 암컷은 다시 실을 뽑아 알덩어리를 꼼꼼하게 덮는다. 본받을 점이 참 많은 작은 동물이다. 무당거미 분홍색 알만 노리는 사마귀붙이 애벌레의 교활한 생존법도 덤으로 알게 되니 새삼 자연의 신비가 경이롭고 흥미진진하다. 거미 다큐멘터리를 보실 때 사마귀붙이 애벌레도 함께 찾아보시길 권한다.

겨울에 영지의 도처에 무당거미와 긴 호랑거미가 남긴 알고치가 보인다. 유독 테라스의 까만 기둥과 보 모서리에 하얀 알고치가 여러 개 붙어있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유독 눈에 띄어 거슬리지만 한해의 긴 생명의 순환을 알고 나니 차마 무심한 척 없앨 수 없었다. 테라스에 붙은 알고치를 조심스레 떼내어서 숲으로 옮겨준다.


거미를 알고 경외하는 기분으로 스파이더맨 영화를 다시 보면 거미줄을 멋지게 뿜어내는 그 슈퍼 능력을 현실처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1 다윈의 나무껍질 거미(Darwin’s bark spider)는 25m 거리를 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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