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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없는 집

by 소원상자

집은 사람의 체온으로 완성되는 공간이다.

벽과 천장, 창과 문은 그저 뼈대일 뿐이고, 그 안에 드나드는 사람의 호흡과 발걸음이 집을 집답게 만든다.


부모가 없는 집은 이 당연한 질서를 잃은 자리다. 집은 여전히 서 있지만, 그곳은 마치 제 역할을 잃은 껍질처럼 텅 비어 있다.

그런 집에서 자라는 일은 늘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불러온다.

하나는 결핍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독립이다.



결핍은 '보호가 없는 나'라는 사실을 매 순간 상기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은 그 결핍의 바닥에서 비밀스럽게 자라난다.

혼자 밥을 차리고, 혼자 감정을 눌러 넣고, 혼자서도 하루를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은 서투르기만 한 어린 존재를 조기에 어른으로 빚어낸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독립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다. 어른이 된 몸속에 아이의 마음이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등을 토닥여 주기를, 한마디 꾸중이라도 던져 주기를 바라는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 없는 집은 늘 이중적이다.

한쪽은 어른의 강인함을, 다른 한쪽은 아이의 그리움을 품는다.

이 모순은 때때로 삶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자란 사람은 결핍을 오래 기억한다.


부모 없는 집은 공허를 남기지만, 그 공허가

사람을 더 큰 품으로 이끌기도 한다.

결국 부모가 없는 집은 단순히 슬픔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집을 세워야만 하는 숙명을 가르쳐주는 공간이다.

한 번 무너진 자리를 다른 방식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책임, 그것이 때로는 자기를 돌보는 힘이 되고, 때로는 타인을 보듬는 힘이 된다.


부모 없는 집은 상실의 현장이자 동시에 새로운 사랑의 기원을 잉태하는 자리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하나일지 모른다.

집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나누는 대화는 정다운 그것.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집을 다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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