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 목적지를 위해 올라타는 버스. 보다 편한 이동을 위해 택시. 먼 지역을 가기 위해, 여행 가는 기분을 내는 기차. 타기 전부터 두근 거리는 비행기. 우리는 수많은 이동수단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이동수단은 타는 방식도 이용하는 때도 다르다. 그 종류도 다양하고 목적지는 셀 수 없다. 나는 어떤 기분으로 여정길을 알리는 탈 것에 올라설까.
시내버스를 탔다. 이상하게 주변에 차를 가진 친구들이 늘어나고 씀씀이가 커져 택시를 타게 되면서 잘 이용하지 않게 되던 어색한 이동수단. 학교를 다닐 때 매일매일 버스를 타면 늘 보는 친구들을 마주치고 웃고 떠들다 다 함께 내려서 교문에 들어섰다. 그때의 버스는 우리의 등하교시간에 모임의 장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탔던 버스에서는 그렇게 내리는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내리고 싶은 곳에 도착하기 전에 누르는 빨간색 버튼. 사람이 타고 내릴 때 들리는 문을 여닫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이제 나에게 시내버스는 뭔가 전통시장에 갔을 때의 기분을 준다. 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버스터미널. 나는 어딘가 타지로 갈 때 기차보다는 버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뭔가 좀 더 여유롭고 접하기 쉬운 느낌이 들어서랄까, 편하게 이용하게 된다. 타 지역에 대학을 가게 됐을 때, 나는 거의 주에 두 번은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그때의 버스는 집에 가게 해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학교로 데려다주는 큰 자동차였다. 그러다 점점 친구들 혹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타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탈 때면 여행의 시작을 알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 줬다. 버스에 올라탈 때 아직까지 종이로 된 승차권을 뽑아서 타는 것은 그때의 설렘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음이다. 학창 시절에는 앉는 순간 바로 잠에 들 정도로 편했는데 이상하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앉아서는 통 잠을 못 자겠다. 시외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 앉아있을 때도 잠에 들지 못하고 커튼을 살짝만 걷어 틈새로 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리는 노래를 감상하곤 했다. 나에게 시외버스는 어디로 가는 가에 대한 알림이었다.
기차를 탄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린 시절에 탔던 기차는 넓었다. 버스를 탈 때 느끼지 못하던 감정. 뭔가 특별한 이동수단에 올라타서 테이블도 있는 넓은 자리에 앉아서 가끔 덜컹거리는 선로를 느끼며 목적지로 향하는 기분. 버스가 알림이었다면 기차는 실현이었다. 기차 안에서는 내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시절에 있던 기차 속의 작은 간식 카트의 모든 먹거리는 하나씩 다 먹어 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이제 그 카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하니 다시 그 감정을 느끼진 못할 것 같아서 아쉽다. 가장 최근에 기차를 탔던 것은 이년 전쯤의 기억이다. 어릴 때 그렇게 넓어 보이던 기차는 이제 버스보다 좁아 보였고 실제로도 좁았다. 다리를 구겨 넣어야 내 자리에 온전히 있을 수 있었고 무릎이 불편해 피려는 순간 앞사람에게 거의 닿을 듯해서 다시 굽혔다. 어릴 때 실감 나는 여정을 안겨주던 덜컹거림과 선로에서 내는 소리는 불쾌한 소음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아 이어폰을 꽂아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몸을 구겨서 타고 와서인지 더욱 피곤함이 몰려왔고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소리를 내뱉게 했다. 분명 기차는 좋은 이동수단이 맞다. 정해진 시간에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여행의 기분을 내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
그리고 이제 우리가 놀러 갈 때는 대부분 비행기를 탄다. 내가 제일 어린 시절 탔던 비행기는 공항에 들어갈 때부터 비행기를 타고 내려 공항에서 나올 때까지 신기한 경험 그 자체였다. 어린 마음에 매일매일 비행기를 타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로 너무 재밌었던 특별한 기억. 그리고 빠른 속도로 갈 수 있다는 편리함. 무엇보다 단순히 비행기를 탈 것이라는 소리만 들었음에도 느껴지던 여행이라는 설렘은 다른 이동수단이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의 비행기는 조금 좁긴 하지만 그 설렘은 여전하다. 높은 하늘에서 보는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들. 개미만 하게 보이는 집들과 마치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직접 현실로 보는 듯한 우월감. 특별한 기계에 올라탔음을 느끼게 해주는 내부 모습과 승무원들의 설명하는 모습. 여행을 간다는 기분을 내게 하는 것에 비행기 예약만 한 것이 없다. 이리저리 오갈 때에 비행기를 탈 만한 거리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만약 내가 문득 어딘가 떠나서 현실에서 잠시 도망쳤다 돌아오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우선 비행기 표를 예약할 것이다. 그 예약에 담긴 수많은 의미가 나에게 다른 생각이 나지 않게 해 줄 것이기 때문에. 물론 다른 탑승수단에 비해 번거로운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 과정마저도 설렘이 귀찮지 않게 만들어 준다. 얼마나 특별한가. 나는 비행기를 탐으로서 상상만 하던 하늘 위를 걸어갈 수 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면 자주 걸어간다. 시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빠를 테지만 이상하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걸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걷는다-라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색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이동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어릴 때 걸음마를 익힐 때부터 우리가 방에서 화장실을 갈 때, 집 앞의 어딘가를 갈 때 당연히 걷는 것이 맞기 때문에 이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방에서 나오려는 순간 일어서서 발걸음을 떼어야 하는 것이다. 걸음이란 이동수단은 한 문장으로 의미를 압축시키기 어렵다. 내 글 솜씨가 부족함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만큼 많은 것을 가져다주고 가지게 하는 이동수단이라는 뜻.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걸을 때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아무 생각 없이 눈으로 보며 천천히 쉬는 것도 조금 빠르게 걸어서 운동을 하는 것도 새로운 장소를 걸으며 감성을 얻는 것도 예쁘게 꾸며진 혹은 볼거리가 넘치는 곳을 구경하며 문화를 즐기는 것도 좋아한다. 걸음은 분명히 우리 몸의 노동인 만큼 확실한 값어치를 해준다. 그 짧은 시간에 가지게 되는 시간과 감정들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걷는 것이 좋다. 색다름을 주기에 아무런 노력과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잠시 일어나 옷을 입고 집을 나서서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에 많은 것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시간, 원하는 거리를 걷다 보면 많은 것을 얻은 채로 다시 소중한 집으로 향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버스에서 기차에서 비행기에서 그리고 걸음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