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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Dec 21. 2023

사랑만으론 부족해서

 사랑이란 말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이렇게까지 꼭 맞는 단어가 어디 있을까. 내 사랑을 전할 때 사랑해란 말 이상으로 더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질 않는다. 사랑, 그 단어 존재만으로 최고의 감정이 실존함을 입증한다.


 사랑을 속삭일 때 미소 짓는 서로가 너무 웃겨서 견디질 못한다. 그 간지러움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어떻게든 내 사랑이 진실되도 거대함을 보여주고 싶어서 애가 탄다. 먹고 싶은 것 하나라도 더 먹여주고 싶고 사고 싶은 것 하나라도 더 사게 해 주고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모두 다 이룰 수 있게 옆에서 함께 있어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노력한다. 이런 표현들이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사랑이란 단어에 담긴 뜻을 알게 해 주리란 생각만으로 보상은 충분하다. 어릴 때야 중요한 것이 뭐 더 필요하겠나. 함께 있는 순간에 둘이 서로 보기만 해도 행복하니 그것만으로 사랑을 얘기하기에 충분했었다.


 점점 남들이 보여주는 것이 늘어난다. 값비싼 장신구와 명품선물, 호화스러운 여행과 음식들, 성대한 이벤트나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도 할 수 있다는 듯한 오만 활동들. 그리고 소소하면서도 서로의 일상을 완전히 녹여내는 수많은 종류의 데이트코스.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묻고 하고 싶은 것을 찾던 시간은 지나고 남들만큼 우리도 멋진 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분명 이 또한 우리의 사랑도 남들 못지않게 크고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서라 분명 이를 같이 하는 것도 사랑이라 부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이 다가온다. 오랜 시간의 연애의 결과는 결혼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너의 친구가 먼저 결혼을 했다. 오랫동안 친한 친구인 탓에 나와도 안면이 있어 결혼식에 찾아갔다. 이상하게 결혼식을 보는데 예전의 감동이나 재미 같은 것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 자리에 너와 내가 서있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오랜 연애기간 동안 결혼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다. 서로의 로망을 나누었고 어릴 때는 엄청나게 성대하고 아름다운 드라마 같은 결혼을 서로 꿈꾸었기에 맞는 것도 많았다. 점점 바뀌어 간다. 결혼의 방식부터 사소한 일 하나하나 정하는 것이 조금씩 어려워지고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연애는 서로 앞에서 털어놓고 맞추어 가는 것이라면 결혼은 서로 뒤에서 내려놓고 맞추어 가는 것만 같다. 불편하다. 하지만 사랑이 있기에 결혼을 말할 수 있겠지.


 그 결혼식이 기점이었을까. 요즘 들어 결혼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이 늘었다. 처음에는 나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얘기를 나눴지만 정작 실제로 결혼을 할 생각보다는 결혼이란 단어 자체에 매료되어 있는 것만 같은 너의 모습에 함께하는 미래얘기를 할 흥미가 식어갔다. 점점 부딪히는 문제들에 주어지는 책임들이 무겁게만 느껴져서 차마 너에게서 날아오는 책임들을 마주할 용기가 생겨나지 않았다. 그래서 부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봐 왔으면서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말하는 네가 과연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안다. 결혼은 현실이다. 분명 너처럼 다른 것들 다 따지고 보고 하면서 해야 하는 것이 신중하고 자신을 챙기는 일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보여준 모든 신뢰가 무너져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서 몇 번의 질문에 일그러졌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이별을 말했다. 나의 사랑이 부정당하는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그러니 나는 사랑하니까 헤어진 것이다. 아직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을 하는데 돈이 필요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이 필요했다. 희생이 필요했다. 욕심이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이 책임이 되는 것이 결혼이었다. 사랑을 증명해 보라는 듯 결혼은 많은 것을 요구했다. 사랑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증오하고 너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너에게 모든 사랑을 맞춰주지 못한 무능한 나를 증오했으며 부족한 나를 메워주지 않고 마냥 재기만 했던 너의 사랑이 거짓된 것이라 원망했다. 고작 사랑해란 말 따위에 수많은 의미를 넣고 행복을 채우던 시간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이딴 한 마디가 뭐라고 그렇게 바라고 집착하고 뱉었을까.


 처음에는 사랑이 부족하다 생각했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단순히 이 단어 하나로 표현하는 것이 부족하여 더 표현하지 못해 안달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서 사랑이라도 있어서 너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말도 안 되는 일에 우기는 것보다 너에게 조용히 사랑을 말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점점 사랑으로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어버린 바람에 사랑을 확신하고 지냈고 그 확신에 금이 한 번 가는 순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우리의 사랑이다.


 마지막에 와서야 깨닫는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다. 너무 서로를 믿었기에 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의심할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그 또한 사랑에서 새어 나온 것이 분명했음에도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순간 지워져 버린 미래였다. 이제야 깨닫는 것도 사랑 따위에 가려진 눈이 떠진 것이겠지. 지금은 잘할 수 있는데, 네가 바라는 내가 되고 내가 바라는 네가 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 따위로 지나온 사랑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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