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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같은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같지만 달라서, 더 가까운

by 정다훈

나는 남자다. 공학이 아닌 남중, 남고를 나왔다. 고등학교에서 또래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공놀이를 좋아했다. 잠깐의 틈만 생기면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하지만 나는 공보다 컵을 더 좋아했다. 왁자지껄한 운동장에서 흙먼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땀 흘리며 즐겁게 공을 차는 친구들 틈에 끼는 것보다 혼자더라도 음료를 마시며 여유를 갖는 것을 선호했다. 서로서로 재밌게 경쟁하며 점수를 따는 쾌감보다 말없이 머무르는 시간이 더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지내진 못했다.


사람은 각자의 색깔이 있다고들 한다. 허나 같은 색일지라도 큰 범위 안에서 세부적으로 나뉜다. 친구들은 같은 남자라는 이유로 당연시 여겨지는 통념으로 공놀이를 좋아하겠거니 하면서 제안해 왔고 그들의 틈에서 어울려 함께 놀기 위해서 선택해야 했다. 괜스레 엉뚱한 행동으로 튀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 당시에 ‘특이함’이란 존중받기 어려웠다. 따돌림이나 괴롭힘 같은 건 없더라도 알게 모르게 소외되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튀기 싫어서, 어딘가의 소속감을 가지고 싶어서 나의 취향을 숨겼다.


같은 나이, 성별이니까 당연스레 여겨지는 것에 대한 요구는 나에게 강요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들의 악의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선의였을 것이다. 자신들과 같은 색을 가졌을 것이라 느껴지기에 함께하자는 제안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같은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 다가온 이유는 색이었지만 점점 깊어지기 위해서는 같은 채도와 명도가 필요하다. 비슷한 사람을 찾는 방법은 색이 아니다. 형태다.


‘톤온톤’이 성별이라면 ‘톤앤톤’이 취향이라고 말하겠다. 이미 가지고 있는 색깔의 자체는 닮았을 것이다. 같은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이라고 할 수 있으니.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남색, 하늘색, 다홍색, 주황색, 연두색처럼 여러 가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같은 색 계열임을 보고 익숙함에 쉬이 다가오고 더욱더 많은 같은 점을 공유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함께 할 때 익숙함보단 거리감이 느껴졌다.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이지만 뭔가 다름이 느껴졌다.


나는 같은 색을 가진 사람보다 같은 톤을 가진 사람을 찾아다녔다. 다른 색이더라도 나와 비슷한 명도와 채도를 가진 이를 구했다. 완벽하게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색일지라도 같은 빛 앞에서 나란히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이들과 가까워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다름이 느껴져서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금세 같은 부분이 보이자 더 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오히려 더더욱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익숙하진 않더라도 편안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비슷한 계열을 선호한다. 어느 순간부터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커플룩보다 비슷한 느낌을 내는 시밀러룩이 더 인기가 높아진 것처럼. 누군가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지만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다면 친밀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얻거나 원치 않더라도 해야 했던 선택을 하고 함께 지내는 이들보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이가 더 끌리는 것처럼. 컬러보단 코드가 맞아야 한다.


한때는 톤앤톤을 가진 이들에게 친밀함을 넘어서 무조건 적인 소속감을 가지고 지냈었다. 이게 안정감이라 느꼈다. 그렇기에 그 소속인 입장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해야만 하는 언행이 존재했고 안 맞는 옷이어도 꼭 입어야만 했다. 하지만 톤온톤의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소속감이 아닌, 언제든 존재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단순한 연이 생겨났고 이는 가벼움이 아니라 편안함을 선사했다. 그래서 나는 그 다양함 속에서 더더욱 나 다움을 보일 수 있었다. 나와 다른 것 같지만 얼마든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관계.


사람은 같음보다 닮음에서 편안함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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