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네 서점에서 북토크가 열릴 예정인 것을 보고 신청하여 다녀왔습니다. 종종 이런 행사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뭔가 참가할 마음이 생기진 않았는데 갑자기 포스트를 보고 나서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내용은 유익했다-라고 말하기보단 색다른 경험이었고 또 그로 인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강연을 해주신 작가님은 이번에 자신이 생각한 좋은 글, 그것들을 읽고 느낀 바를 적어둔 책을 소개해주시면서 여러 글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중간에 참여자들에게도 본 글들 중에 와닿았던 글을 한 번 필사를 해보십사 하며 종이를 주셨고 별다른 생각 없이 좀 적기 편하게 짧은 글을 필사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편리한 이유 때문은 아니고 적은 사람의 의도나 대부분의 사람이 가질 생각과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고 느껴서 적어보았습니다. 이자람 님의 <<오늘도 자람>>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히 쌓이는 것의 힘 그것의 강함과 무서움을 안다'라는 글입니다. 오랜 세월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신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노력이 있으셨을 터, 그렇기에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언젠가 가져다주는 결과에 소중함을 많이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라도 자신이 그동안 해온 노력의 힘을 말할 수 있으시겠죠.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줄에 나온 강함과 무서움, 이는 자신의 성장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걸어온 긴 시간을 놓을 수 없음에 잡아먹히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보이지 않는'것을 미지로 생각한다면 인간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는 듯합니다. 호기심과 두려움. 저는 이 둘 중에 두려움에 좀 더 초점을 맞췄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자신 스스로 쌓아 올리는 노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 수 없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즉, 미지에 대한 공포로 읽어지더군요.
아마 지금 제 상황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읽을 때 자신의 상태나 상황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바가 달라지니까요. 지금의 저에게 노력은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든요.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들어왔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틀렸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결국 노력은 어떠한 운과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의미 없었던 시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제가 알지 못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지요.
이자람 님이 꼭 '무서움'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가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긍정적인 표현이 있음에도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이 쌓아온 시간의 덧없음을 떠올리신 걸까요 그게 아니면 정말 단순히 강해짐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인생을 바쳐서 해온 일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없음이 정말로 무서웠던 것일까요.
사람마다 피어나는 시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싱어게인이라는 프로를 볼 때 심사위원으로 나오셨던 코드쿤스트님이 말씀하셨죠. "전성기라는 건 보통 많이들 하는 실수가 나이가 어릴수록 더 가능성 높고 이후가 더 화려할 거라 판단한다. 자기가 피는 시기는 자기가 정하는 것." 듣고 꽤 신선한 충격이었고 이 사람의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분명 저희는 빠름을 바랍니다. 버핏의 투자방식을 따라가면 무조건 3-40년이 지나면 부자가 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잘 따라 하지 않습니다. 버핏은 이를 "사람들은 빨리 부자가 되길 바란다."라고 했었죠. 우리는 결과를 원합니다. 자신이 쌓아온 노력의 결실이 어떤 형태로든 보이길 바라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좋은 평가를 받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노력을 하는 동안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기에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포기를 하게 되는 것 같네요.
언젠가 이렇게 축적을 해나가다 보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바뀌고 그 호기심이 찾아낸 것은 저만의 전성기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