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람소리

지독한 하루의 시작 혹은, 달콤한 꿈의 시작

by 정다훈

삐삐삐삐- 오전 7시 30분, 아직도 살아있단 사실을 일깨우는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분명 어젯밤 짙은 어둠 속에서 더 어둡게 눈을 감고 잠시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난 아직 여기 있다. 잠깐 한탄스러움을 느끼고 싶었으나 이내 다시 울리는 알람소리에 짜증스럽게 일어난다. 또다시 ‘나’가 아닌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이름보다 호칭으로 불려졌다. 학생, 삼촌, 아저씨, 취준생, 알바, 직원, 사원. 가끔 누군가 —씨라고 부르지만 이름으로 들리지 않는다. 분명 저 사람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닐 테니까. 내 하루는 그렇다.


언제 친구가 물었다. ‘만약 니가 하루에 86400원을 받는다면 어떻게 쓸 거냐’고. 어이가 없었다. 한 달 2,592,000원의 금액, 생활을 겨우 유지 중인 빠듯한 내 월급과 비슷했다. 물론 그 동기부여 글이 이런 의미가 아니라 매일 주어지는 소중한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뜻임은 알고 있지만 내 하루는 86400초, 24시간이 아니야. 출근과 퇴근, 식사와 취침을 제외하고는 고작해야 4시간 남짓이 남아. 그 마저도 화장실을 가거나 집안일을 조금 하면 남은 시간에 취하고 싶은 것은 휴식이지 자기계발이 아니다. 그래, 주말로 말해보자. 출퇴근이 없다. 이것만으로 10시간이 생겼다. 몸에 쌓여있는 피로를 돌보고 자기계발을 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럼 나는 어떤 발전을 해야 할까.


여럿 꿈을 가지고 자랐어. 하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하루종일도 할 수 있었고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포기하는 것이 생겨났고 나는 그렇게 수많은 꿈을 대부분 포기했지. 본래 낙관적이었던 성격은 그런 포기가 쌓이면 쌓일수록 비관적이게 되었어. 또 다른 것을 도전한다 하더라도 높은 벽에 치여서 포기할 법한 얄팍한 재능과 관심일 뿐이라고, 지금 당장 일하면서 내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되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정도로.


근데, 뭘 해야 하는데. 그렇게 스스로의 가치를 올리고 자신을 가꾸고 인정받으려면 지금의 월급쟁이인 내가 뭘 해야 하는데. SNS에 떠도는 말도 안 되는 사업이나 어디서 본 걸 끌고 온 동기부여를 보면서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한 적이 없다. 그게 설령 진짜로 돈을 벌 수 있거나 나를 한 차원 위로 데려다준다고 해도 한낱 우스갯소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 현실성이 없으니까. 나의 현실에 그런 삶은 고통일 뿐이야. 행복하라며,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면서. 근데, 그러면 못 살아.


나도 꿈이 많았었다고 했잖아. 왜 접었는데. 진짜 하기 싫어서? 나한테 안 맞아서? 제일 큰 이유가 그걸까? 아니. 나에게 가장 큰 가치가 지금 들어간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 됐으니까. 내가 그림을 그려서, 글을 써서, 영상을 만들어서, 노래를 불러서, 춤을 춰서, 연기를 해서 언제 돈을 버는데. 차라리 공부가 나았잖아. 시험에만 붙으면 돈을 벌게 해 준다잖아. 그래서 결국 다시 돌아왔어. 그렇게 못하겠어서 도망쳤던 곳이 낙원이었을 줄, 낙원으로 생각하고 뛰어들었던 곳이 심해였을 줄을 누가 알았겠어. 찬란한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지만 마주한건 황폐하게 메말라 갈라진 땅이었고 돌아온 이곳은 지옥이 아니라 작은 우물이 있는 그냥 그런 곳이었어.


매일매일 눈뜨는 시간이 오늘은 어떤 사람이 되어볼까 하고 기대되는 시간이었고 빛만 존재했었던 시간은 오히려 지금의 나를 더욱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었을 뿐. 그러니까 나에게 빛을 강요하지 마. 모두에게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내 발밑의 위험이 보일 정도로만 키고 싶어 졌으니까.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9화혁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