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의감

by 정다훈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시간의 흐름은 뒷 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를 추억이라 부르지만 후회라고도 부르며 지나온 과거라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여실히 느껴지는 현실이라고도 말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동네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10년 전과 다른 가게가 들어서고 또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만 결국 내가 보는 큰 틀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10년 전의 나는 10년 후의 나를 기대했다. 얼마나 성장했을지, 어떤 멋진 삶을 살고 있을지. 그 10년 후의 나는 10년 전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 10년 전의 나는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편안했는지 하며.


10년이란 시간 동안 나조차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똑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항시 세월에 흘러가지 않고 머무르는 무언가를 마주할 때면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어릴 때부터 매일같이 갔었던 편의점. 매대의 상품종류가 조금 바뀐 것을 빼면 거의 그대로다. 과거의 나에게 편의점은 대형마트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맛있는 과자와 신기한 먹거리가 가득하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높이의 음료들, 이유는 모르지만 문만 열면 어머니가 기겁하던 아이스크림 냉장고. 천국이랑 다를 바가 없었을 터, 지금의 나와는 감상이 다르다. 들어가자마자 곧장 카운터로 달려가 담배를 사던가 마실 것 하나만 대충 골라서 나온다. 그것도 만약 행사상품이 있으면 괜히 그걸 사곤 하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이나 닿고 싶은 것 따위는 없다. 그때와 똑같은 것은 지금은 더 열기 힘들어진 아이스크림 냉장고 하나 정도.


변하지 않는 환경은 안정감을 선물하지만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나는 나의 인생 대부분을 살아온 동네를 사랑했다. 이보다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지금도 다른 곳에 떠났다가 차가 동네로 접어들어 익숙한 건물과 풍경이 보일 때부터 평안을 되찾곤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계속 지내면 지낼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다가온다. 최근 트루먼쇼가 갑자기 떠올라서 본 이유가 아닐까. 당연하고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느껴진다. 분명 세상은 급박하게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이상하게 내 주변은 그대로다. 모두들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으면서 하고 있는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큰 틀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10년 전에 가보았던 가게를 찾아가면 나는 또 10년 전의 나처럼 느낄 수 있을까.


근래에 예전에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찾아들곤 한다. 옛날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그때 있었던 일들을 후회하기도 하면서 감상에 젖었다. 문득, 뭔가 다르다는 기분이 들기 전 까지는. 분명 똑같은 장소, 변한 것 없는 인테리어지만 뭔가 다르다. 옛날에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았기에 달라진 몸과 마음이 그 괴리감에 미쳐버린 것일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어색함을 떨치기엔 역부족이다. 그만큼 나는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별다른 생각은 없다. 그저 과거의 추억에 따라 미화되었거나 변질된 기억이 실제로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괴리감에서 오는 착각일 것이다.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나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는 변화가 있을 만큼의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이상한, 신기한 기분만큼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지는 것. 그게 나의 회의감일 것이다.


알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 의심이 된다-라는 것. 어떻게 보면 망상증이나 괜한 허튼소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 자신의 기분이 그렇게 급박하게 변해버렸는데 어떻게 놓아두는가. 10년 전에 있었던 곳에 나라는 평행우주가 다시금 이동한 것만 같은 지금, 나의 모습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내 세상에서 보이는 모두가 나를 똑같이 보고 있는 것일까.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20화알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