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미우라 켄타로님의 만화 ’베르세르크‘의 명대사, 작가의 인생철학을 보여주는 대사이자 ’운명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주제인 만화의 전체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최고의 명대사다.
아, 얼마나 지독한 운명인가. 주어진 대로 살아가기엔 너무 척박해서 스스로 이겨내지 않는 한, 구렁텅이에 박혀 있을 수밖에 없음이라. 그렇기에 아등바등 탈출하려 지옥불에 들어가 스스로를 녹이고 굳혀서 두드리며 더더욱 단단해지려 한다. 쇠가 아닌 사람이. 나는 그 불구덩이에 들어가기 싫어서 밖으로 도망쳤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었다. 다만, 그 낙원은 무한정하지 않았고 또 다른 낙원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결국에 지옥불을 거쳐야만 한다.
꿈을 꾸고 쫓는 이들이 도망친 자라고 불릴 수 있는가. 그들은 사회에서 정해둔 ‘평범’한 일생보다도 자신이 세운 가치관만으로 길안내를 새롭게 만들 뿐이다. 그들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 심연의 불 속으로 뛰어든 이들이 아닌가. 하지만 한없이 뜨겁고 어두운 곳일지라도 그곳은 낙원을 위한 곳일 뿐이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운 이들이 도달한 곳이 대외적 낙원일지라도 그 사람에게도 그런 의미일지는 모른다.
나는 도망쳐서 낙원을 찾고 싶다. 왜 도망쳐서는 낙원을 찾을 수 없나. 만약 낙원이란 곳에 정말로 존재한다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뿐은 아닐 텐데. 오로지 모두가 바라보는 곳만이 낙원은 아닐 텐데. 왜 우리는 도망칠 수 없는가.
최근에 본 글귀에서 ‘사람은 도망쳤다고 혼나지만 다른 동물은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도망친다. 어떻게 인간은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걸까’라는 내용을 봤다.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하면서도 내심 포식자의 위치에 서고 싶어 함이 아닐까. 삶에 대한 의지보다 남보다 강한 자신의 위치가 소중해진 것이 아닐까. 항상 행복에 대한 글이나 개념을 볼 때면 배고픈 이어도 부자보다 행복할 수 있다는 듯이 적지만 그 누가 행복한 거지를 원하는가. 우리는 불행한 부자가 훨씬 성공한 삶이라 말한다. 그렇게 행복을 바라면서도.
아, 도망친 곳에서 낙원을 찾고 싶다. 주변에서 지옥에 빠져들었다고 손가락질할지라도 나만의 낙원에서 살고 싶다. 설령 빠져든 곳에서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다 해도 그곳은 영원히 나만의 낙원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 낙원이 끝나는 날에 내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