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취업이라니...볼터치에 힘을 준 화장을 하고 뾰족한 8센티 핑크 구두를 신고 단정한 정장 치마에 핑크 리본 블라우스를 차려입고 또각또각 첫 출근을 했다. 오전 9시. 학교 방송이 울려퍼졌다.“ 입학식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9시 10분까지 강당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12명의 아이들을 사진과 얼굴을 대조하여 출석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강당으로 호출이다. 그 그런데 강당이 어디냐고... 아이들의 교출?방지를 위해 ㅁ자로 지어졌다는 학교는 출근 전날 교실자리를 익히기 위해서 돌고 돌아 봤지만 돌다보면 제자리였다. 용기를 내서 구석 코너 다른 길로 들어서면 어두 컴컴한 교실만 쭉 하니 늘어서 있고 칸칸마다 낯 모르는 교사들이 자리에 앉아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부리나케 나와 걷다보면 다시 시작점. 그렇게 교실도 익히지 못했는데 강당이라고? “ 저 저기요. 강당이 어디에 있어요?” 한눈으로 아이들이 교실에 있음을 확인하며 급하게 복도로 나가 첫 대면한 옆 반 샘에게 강당 위치를 물어보지만........그녀 역시 신규였다. 스물 네 다섯명의 신규교사가 같은 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우리 동학년 다섯명의 교사 중 부장을 제외한 네 명이 모두 신규.... “저도 잘 모르겠어요.” 허허 일단 나가보자 나가다 보면 모두가 향하는 곳이 있겠지..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교실에서 온갖 소리를 내지르고 줄은 무시한 채 삐툴빼툴 걷는 아이들이 교사의 손 뒤로 어렵게 줄을 서서 나오기 시작했다. 등 줄기로는 3월을 잊은 듯 땀이 흐르고 단정하게 동여맨 리본은 벌써 동혁이가 쭉 잡아 늘어트려버렸다. 아~! 시원한 보리차 한잔 들이키고 싶지만 나는 선생이니까 정신줄을 꽉 붙들자. 새로 산 빳빳한 실내화 만큼이나 걸음걸이가 뒤뚱거린다.
강당 가득 아이들의 알 수 없는 인사 소리와 방송소리가 모하게 섞인 그야말로 신기한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와 이제 내 아이들과 인사를 할 때다. 중등을 전공한 나에게 맡겨진 초등 5학년 아이들..책에서 이론으로만 보던 지적장애 아이에 교생 실습때 예쁘기만 했던 자폐 친구들이 실제가 되어 한아이 한아이 내 앞에 앉아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는 승연이와 삐진 것처럼 실눈을 뜨고 나를 째려보는 아영이, 베시시 웃으며 본인에게 말을 시켜주길 수줍게 기다리는 다운증후군 경한이, 깡 마른 몸에 짙은 눈썹을 가진 자리에 절대 앉지 않고 서 있던 민후, 잘생겼다는 말이 아까운 만큼 수려한 외모에 다리를 꼬고 앉아 불안한 듯 다리를 떨고 있는 정후 아직 네 다섯명 밖에 얼굴과 이름을 매치하지 않았는데 민후 다리에서 쉬가 흘러 내린다. 낯선 환경, 낯선 선생님과 첫 만남에 화장실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참기만 하던 민후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연신 미소를 짓는다. 잠깐만 얘들아 교실에서 나가면 안돼. 민지의 웅웅 거리는 소리에 섞여 쥐소리 만큼 작게 설명하고 민후를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남자 화장실로 가야하나 여자화장실로 가야하나 아이의 인권과 나의 인권과 고민하는 찰나 아차 갈아입을 옷을 안가지고 왔다. “ 민후야 남자화장실에서 물 수건으로 몸을 좀 닦고 바지 갈아입을 수 있겠어?” 민후는 낯가림 때문인지 대답하지 않고 화장실 앞에 묵묵 부답 서있다. 입고 있던 정장 치마 폭이 좁아 종종걸음으로 교실에 가서 민후 가방에서 바지를 찾았다. 민후에게 물수건과 바지를 들려 준 채 남자화장실 앞에서 교실의 움직임과 민후의 움직임을 동시에 노려보며 멀뚱히 서있다. “민후야 조금만 서둘러 줄 수 있을까?” 소리없는 침묵이 흐르고 화장실 한가운데서 바닥에 옷을 늘어트린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민후를 발견한 건 인내심이 끝에 달할 지경이었다. 일단은 수업시간이라 사람이 없으니 용기를 내서 남자화장실에 첫 입성했다. 민후가 바지와 속옷을 벗는동안 돌아서 있다가 다시 수건을 건네고 갈아입을 옷을 건네고.... 마음속에선 교실에 있는 한 아이라도 사라지거나 마음대로 교실을 나가면 안되는데... 그렇게 민후의 옷을 갈아입히고 옷을 빨 사이도 없이 봉지에 쑤셔넣고 느릿느릿 걷는 민후 손을 잡고 교실로 들었다. 세~~~입 정말 다행히 아이들은 바닥에 앉거나 소리를 내거나 천정을 향해 손가락을 돌리는 등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바깥구경을 나가진 않았다. 휴우 2교시 마치는 종이 울린다.
쉬는 시간이다. 미리 적어둔 화장실에 보내야 할 아이 리스트를 챙기고 한명 한명에게 화장실에 갈지 묻고 나서 줄을 세워 화장실로 향한다. 이 교실 저교실에서 화장실로 뛰어가는 아이, 선생님 손을 잡고 화장실을 향해 모여드는 아이들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우리 반 아이들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살핀다. 목이 마른지 두시간이 지났지만 아직은 민정이가 나오지 않았다. 복도에서 다른 교실로 구경가는 학생을 살펴야 한다. 교실로 너하나 나하나 손 잡고 돌아와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일단 물을 한모금 마셔보자. 그리고 다시금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자. 이렇게 있다가는 누가 사라져도 모른채 열두명이 다 있는지 세다가 하루가 다 갈 듯 하다. 사진기를 꺼내 한아이 한아이 이름을 부르고 사진을 찍는다. ‘선생님’ 배배 꼬며 사진기 앞으로 다가가는 경한이가 나의 첫 도우미 경한아 재진이 좀 잡아줄수 있을까 부탁하며 정성스럽게 한명한명의 사진을 남기고 자리에 앉지 않은 민후를 바라보며 씽긋 웃어준다. 민후에게 아직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자리에 앉아보면 좋겠다고 말은 하지만 민후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절대 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래 민후 좋은대로 하려므나. 오늘은 첫 날이니 4교시까지만 끝내고 아이들은 하교한다. 스쿨버스 각 호차마다 아이들을 태워 올려보내고 바라보지 않는 아이들과 억지 눈 인사를 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스쿨버스가 떠날 때 교사들 모두 서서 일렬로 서서 보이지도 않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든다. 손 인사와 함께 1차로 한숨을 날려보내고 2차 전쟁 시작이다. 전교사 회의에 참석하고 전달사항을 적고 학년회의에 참석해 상호 인사를 나누고 할 일들을 전달받고 업무 인수인계를 받고 다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어지러놓은 교구들을 정리하고 탁자를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거울을 본다. 어느새 립스틱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생얼보다 더 추레한 내가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