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로 코로나 바이러스 신규 확진자가 300~400명을 육박하자 아이들이 다니고 있던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학교를 가게 되었다. 물론 바이러스 전파 차단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방법이다. 아이와 나는 또 찰떡같이 붙어 지내게 되었다. 정말, 내가 휴직 안 했으면 어땠을까 아찔하기만 하다.
찰떡처럼 붙어 지내고 싶어도 각자의 뇌를 장착한, 생동하는 인간인 나와 아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갈등이 많고, 나는 화를 내고 혼을 내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고 나서는 나 스스로 못된 엄마라고 자책하게 된다.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내가 진짜 문제가 많은 사람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무석 박사님의 <내 아이의 자존감>을 집어 들었다.
박사님을 만나 상담을 할 수 없으니, 책을 읽어 상담받은 기분이라도 내볼까 싶었다. 이곳저곳의 글귀들에 많이 꽂혔다. 그러다 이 글귀가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아이는 자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기를 확인한다. '나는 예쁜 아이구나.' 이것이 자존감의 핵을 형성한다. <내 아이의 자존감>, 이무석
내 어릴 적이 생각났다.
나는 엄마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엄마가 된 경우가 드물었을 그 당시
친정 엄마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랐고,
8남매의 틈바구니에서 자란 친정 엄마는 엄마의 손길을 느낄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되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가에 대해 고민하는 그때,
엄마와 가까이 지내던 친구분은 아이 키우는 비법을 전수해줬다.
아이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매를 들어서라도 키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나의 엄마는 그 말에 꽂혔다.
맏이였던 나를 정말 엄하게 다스렸다.
어릴 적부터 매를 맞기도 했고, 초등학교 때는 집 밖을 쫓겨난 적도 있었다.
맏이인 나를 키워보고 알게 된 것 같다.
아이는 엄하게 키우면 안 된다는 것을, 아이는 사랑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밑으로 동생 둘은 다행스럽게도 덜 혼났고, 매를 맞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체벌과 비난 섞인 말들에 자칭 쭈그리로 커버렸다.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자존감이 낮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손을 들고 발표라도 하려면 가슴이 터져버릴 듯 콩닥거려서 발표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