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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Sep 17. 2020

공자님 말씀하시길,

낚인 문장 음미하기

아이와 찰떡같이 붙어지내는 요즘,

EBS 온라인 수업을 시청하고 배움 꾸러미를 풀고 그러다 보면

오전 시간이 지나간다.


아이가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내가 휴직을 해서 다행이지, 정말 출근하는 엄마 아빠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겠다 싶은 생각이다.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된 아이가 EBS를 시청하고

바로 TV를 끈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다.

나 어릴 적, TV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바로

TV를 스스로 끄는 일이었다.



어제는 아래층에 사는 동학년 아이를 둔 엄마가 전화가 왔다.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EBS 시청 시간이 다가오니

한번 들여다 봐주라고,


우리 아이는 전화 끊기 무섭게 바로

다다닥 계단으로 내려갔다. 친구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드리니

친구 아이가 주섬주섬 머리를 뒤로 넘기며 나온다.

TV를 켜놓고 잠들었나 보다.

우리 집에서 같이 보러 가자고 해도 괜찮단다.


얼마 전 친구 아이 엄마가 걱정하던 말이 떠올랐다.

코로나 때문에 아이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게임에 입문하기

시작해서 걱정이라며 한숨 쉬던 게 떠올랐다.

결국 엄마가 출근한 사이 하루 종일 게임만 하다

불시에 들이닥친 엄마한테 걸리는 바람에

핸드폰이 두 동강 난 이후로 아이가 침울해한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아래층 아이를 보니 갑자기 심란해졌다.

이러다 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한 의미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는지,

놀이터를 내다보아도 아이들은 보이질 않는다.

간간이 예닐곱 살 아이들은 보이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초등학생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방 안에서 핸드폰, 탭과 씨름을 하는 것은 아닌지.

내년에 학교를 1년 다시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아이가 마냥 노는 것은 아닌가 싶어 다시 문제집을 집어 들었다.

절대 아이를 혼내거나 마음 아프게 하는 말을 휘두르지 않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고 진도에 맞춰 문제집을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2장을 풀리고 정답을 확인하려고 문제집 뒷장을 휙 넘기다 보니

눈길을 끄는 문장을 만났다.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공자님의 말씀이라고 쓰여있다.

글귀 밑에는 조금 늦어도,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요 라는 글귀가 덧붙여있다.

읽어가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마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번 잊어버린다.

혹시나 내 아이만 뒤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안달복달이 등장한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아이의 능력도 다르다는 것을

홀라당 잊어먹고서는

이것저것 다 잘해야 한다고 말하던

내가 떠올랐다.



요즘 읽고 있는 책 <다크호스>에서 만난 글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독자적인 선택을 내리면서 상대적 시간을 포용하면

이제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219쪽)"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나는 학교에서 정해놓은 속도를 맞추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다 지치면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새로운 환경, 처음 마주하는 과목에 대해 적응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라는 사실을 고등학교가 다 끝나갈 무렵에 알았다.

내가 모자란 아이가 아니라 내 속도는 남들보다 반 박이 느리구나,

느리긴 하지만 익숙해지면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알고 나서야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 속도라는 것이 있음이, 이 세상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아이가 아직 다 외우지 못하는 구구단,

완벽하지 않은 받아쓰기가

내 시야를 꽉 채우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조급해져서 아이를 달달 볶아대고 쪼아대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괜찮다.

하루하루 조금씩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괜찮다.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믿어보리라. '공자'님이 허투른 말은 하지 않을 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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