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티 Apr 07. 2024

사과에 깃든 마음

-동굴속으로들어간 사람들-

  새벽 두 시쯤 아파트 정문의 주차 차단기가 활짝 열려 있는 걸 봤는데 나는 핸들을 돌려 직진했다. 갑자기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파주에서 집까지 오는 내내 머릿 속에 이 생각 저생각으로 집을 짓다가 결국 또 아버지 생각으로 갔다. 아버지와 집. 아버지와 나. 아버지와 차, 무수한 생각들은 결국 아버지의 꿈에 다가갔다.

  평생 떨어져 지내며 켜켜이 쌓인 그리움을 후에 같은 집에 사는 꿈으로 곱씹으며 견뎌냈을 아버지가 생각 나 새벽에 바로 귀가를 할 수 없었다. 좌회전을 포기하고 직진을 해서 300m쯤 가면 고깃집을 개조해서 건설현장 직원들의 숙소겸 사무실로 쓰는 넓은 가든 같은 곳이 있었다. 주말 새벽인데 일로 불이 켜 있어 무심코 지나치며 보는데 차 한 대와 유리로 된 출입문 너머에 흙먼지 색 작업화 한 켤레가 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는 외부 계단 위에 보름달처럼 달린 둥그런 가로등. 계단 아래 열린 창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꿈 때문에 많은 시간 외롭게 견뎌냈을 밤들이 저렇지 않았을까.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한적한 외길에 밝은 불을 켜고 다른 이의 외로움을 위로하던 밤들이었을까.

  그렇게 두어 바퀴 동네를 배회하다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검은 집에 전등 스위치를 켰다. 곧바로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하릴 없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배우의 모습이 보여 채널을 고정했다. 십여 년만에 화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그의 작품 해설을 듣다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가 추억하는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닮아 있었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동기는 사과였다.      

사과.

그는 덧칠한 물감을 긁어낸 후 거기에 사과를 그렸다고 했다.  그는 용서와 감사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상처난 캔버스에 그린 사과. 그것이 용서이고 감사이리라. 나도 어떤 이들에게 가끔 쑥스러운 사과 대신 사과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르는 건 국수였다. 이 시간에 잔치국수가 먹고 싶었다.

어떤 집은 면이 맛이 있는데 어떤 집은 아무 맛이 나질 않아 끝까지 면을 먹는 게 고역일 때가 있다. 어느 집에서 내가 면을 맛있게 먹다가 이 집은 뭐가 다르다고 혼잣말을 했더니 사장이 그랬다. 자신은 수타면을 쓴다고. 면을 때리고 칠 때 나는 상처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 거기에 양념이 배서 수타면이 맛이 있는 거라고. 맞다. 맛있다.     


벌레 먹은 사과. 상처 입은 사과. 이리저리 둘러친 면발.

누군가를 용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아문 상처의 흔적이 있는 사람.

그 곁에 있으면 느끼는 그만큼의 공간이 있다. 그것은 그의 내면의 여유이며, 내면의 사랑이고, 치유받은 흔적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상처가 나고 아문 자리만큼.     

사과처럼, 면발처럼, 향처럼.

자신이 깎여 만들어낸 맛과 향이 있다.

모진 세월 파도에 휩쓸리고 깎이며 난 상처를 지닌 조개에서도 캐어낸 향이 있다던데.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과연 나는 거기에 합당한 자인가.

용서받은 자인가.

나는 또 방 앞에서 머뭇거렸다.

살며시 손잡이를 돌리고 손님처럼 내 방으로 들어간다.


#사과

이전 04화 4시 44분(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