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비행 전, 알람을 수십 번 확인하는 이유
또 지각이다.
오래 쉬다가 비행 복귀를 앞두면 늘 같은 꿈을 꾼다. 비행 전에 하는 브리핑 쇼업에 늦는 꿈. 늦잠 자서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를 못 타고 이미 이륙한 비행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꿈. 10년 동안 비행을 했는데도 아직도 이런 악몽을 꾸곤 한다.
브리핑 혹은 비행 스케줄에 늦으면 승무원에게 치명적이다. 미스 플라잇을 하면 경위서 제출을 해야 하고 당연히 인사고과 점수에도 반영된다. 지각도 마찬가지다. 브리핑에 몇 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Late show-up 처리가 된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브리핑 시간보다 보통 30분에서 1시간 먼저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브리핑에 늦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출근하느니 잠을 한 시간 덜 자더라도 일찍 출근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2년의 인턴 기간을 거쳐 근무 평가, 근태 등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에 정직원으로 채용된다. 지각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근무해야 했던 이 2년의 인턴 기간 동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을 했다.
비행을 시작한 지 3개월쯤 됐을까. 4일 연속으로 아침 퀵턴(중국, 일본 등 가까운 나라로 비행 갔다가 그 날 바로 돌아오는 것) 스케줄이 있었다. 퇴근하면 저녁을 먹고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들고 다음날 새벽 또 퀵턴을 가는 스케줄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퀵턴 3일째 되는 날, 너무 피곤한 나머지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든 것이다. 회사에 아침 7시까지 가야 하는데 나는 자고 있었고 6시 40분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OOO 승무원이시죠? 지금 어디쯤 오셨어요? 출근 중인 거 맞나요?"
전화를 받는 순간 너무 놀라서 심장이 내려앉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헐레벌떡 일어나서 유니폼만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품을 챙긴 채로 택시를 탔다. 지각은 처음이라 너무 놀란 나머지 택시 안에서 계속 눈물만 났다. 너무 놀라면 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비행 못 가면 어떡하지. 지각 처리되면 어떡하지. 나 이러다 정직원 안되면 어떡하지. 사무장님이 엄청 혼내시겠지..?' 택시 안에서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눈물을 훔쳤다.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는데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이미 내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라 화장도 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지각한 나를 제외하고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자마자 어디 신입이 지각을 하냐는 둥 정신 차리라고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근하면서 이미 눈물 한 바가지 흘려 눈이 퉁퉁 부은 내 모습을 보고는
" 회사 전화받고 많이 놀랐죠? 자 이제 비행 가야지. 진정하고 화장실 가서 거울보고 화장 좀 더 고치고 오세요."라고 말해주며 오히려 놀란 나를 다독여주는 것이 아닌가. 얼른 눈물 자국을 닦고 메이크업을 하고 같이 비행 가는 사무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사무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알람을 맞추고 않고 잠들어서 늦었습니다."
"허허... 그럴 수도 있지. 승무원들 누구나 한 번씩은 겪는 일이야. 오늘 비행 잘할 수 있지?"
"네 사무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각한 신입 승무원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놀란 나를 다독여주신 두 분 덕분에 무사히 비행을 다녀왔다. 사무장님처럼 후배의 실수를 다그치지 않고 다독여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무원도 사람인지라 늦잠을 자기도 하고 비행시간을 착각하기도 한다. 가끔 브리핑 혹은 비행에 늦는 승무원들을 보면 내가 지각했던 아찔한 순간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 날의 기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던가. 1년 차 인턴 시절의 지각 덕분에 꺼진 알람도 다시 보는 습관이 생겼고 다른 누구보다 회사에 일찍 출근하는 승무원이 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 후로 한 번도 늦은 적 없이 성실하게 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