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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언니 Dec 10. 2020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

저기요. 혹시...?


승객들이 설레는 여행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 나는 10년 차 승무원이다.

사주를 보러 가면 내 관상과 사주를 보는 사람마다 어쩜 다들 그리 똑같이 말하는지,

"아유. 역마살이 제대로 붙었네. 일복이 터졌어. 아주 천직이야 천직!!"

역마살이 제대로 붙은 데다가 일복 터진 내 사주 탓인가, 내가 타는 비행기는 늘 만석이었다. 비행 전에 승객 예약률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10년 동안 비행을 했는데도 아직도 여행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올해 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떤 비행기는 승객보다 승무원이 많기도 했다. (*승객이 적어도 안전 문제 때문에 승무원 최소 탑승인원이 정해져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더 이상은 예전처럼 자유여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예전에는 승객과의 대면 서비스가 중요해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장거리 비행을 갈 때면 승객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승객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터진 후 기내 모습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기내에서도 언택트를 지향한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서비스를 하고, 가급적이면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손님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을 궁금해하고, 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무원이 기내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일까?




1. 기내식 언제 나와요?
-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여행의 꽃, 바로 기내식이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손님들은 기내식이 맛있게 데워지는 냄새가 퍼짐과 동시에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물어보곤 한다.
"기내식 언제 나와요?"
 

2. 몇 시간 남았어요?

- 장거리 비행은 보통 짧게는 8시간, 길게는 15시간을 가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특히나 미주 동부는 반나절 하고도 몇 시간을 더 가야 한다. 아무리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좀이 쑤실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식사가 끝나고 승객들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어둡게 조명을 조절한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나서 승객들이 잠에서 깨면 묻기 시작한다.

"저기요. 얼마나 남았어요?"


3. 볼펜 있어요?

-아마 10년 비행하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라고 확신한다. 어느 나라를 가건 입국 서류 또는 세관신고서가 필요하고,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입국 서류를 배포하기 때문이다. 한 승객이 "볼펜 있어요?"라고 물으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볼펜 전쟁의 서막이 열리는 것이다.

입국 서류 나눠줄 시점이 되면 승무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각자 가방에 챙겨 다니던 비상용 볼펜과 비행기에 실린 볼펜을 말 그대로 탈탈 털어 가져온다. 마치 전쟁에 나가기 전 총알을 장전하는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유니폼 블라우스에 꽂혀 있는 볼펜 마저 다 드리면 다른 승객이 볼펜을 달라고 해도 드릴 수가 없다. 빌려드린 승객에게 돌려받아야 다른 승객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센터나 우체국에 가면 테이블에 볼펜이 붙어있는 것처럼, 가끔은 기내 좌석에도 볼펜이 붙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한다.


4. 이제 퇴근이에요? 여기서 며칠이나 묵어요?

- 국내선이나 중국, 일본 등 가까운 나라를 가면 많이 듣는 질문이다. 국내선이나 단거리 비행을 가면 승객들과 대면할 시간이 짧아서 대화를 거의 못하지만, 하기 인사를 하려고 서있으면 손님들이 내리실 때 이렇게 물어보시곤 한다.

"이제 집에 가는 거예요?"

"여기서 며칠 묵어요?"


5. 수고하셨어요

- 아마 "볼펜 좀 주세요" 만큼이나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닐까. 승무원들이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며 하기 인사를 하면, 승객들이 대부분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며 내리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해서 손님들이 "수고하셨어요" "고생 많았어요"라고 말할 때면, 긴 장거리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행복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오곤 한다.

최근에는 승객들이 진심으로 안쓰러워하시며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하는 게 느껴진다. 방호복, 고글, 니트릴 장갑으로 완전 무장하고 14시간을 비행하는 승무원을 보면 내가 손님이라도 진심이 우러나올 것 같다.




손님들에게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은 지가 언제였던가. 여름에 마지막으로 비행했는데 벌써부터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아마 내년에 비행하게 될 텐데 볼펜 전쟁에 대비해서 캐리어에 굴러다니는 볼펜들을 다 챙겨서 가야겠다. 몇 안 되는 손님들이 기다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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