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보다 건조하다는 기내에서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은
지금 아무 검색엔진이나 켜서 승무원을 쳐 보세요. 자동완성으로 승무원 미스트, 승무원 핸드크림, 승무원 쿠션, 승무원 향수 등이 연관검색어로 뜨는 것을 알 수 있죠.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에 '승무원들이 쓰는 수분크림' , '승무원 필수템 팩트'라고 버젓이 광고하고 화장품을 파는 것을 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이런 제품들을 승무원들이 실제로 쓰고 있을까요? 승무원들 사이에서 유명한 화장품이 있을까요? 승무원 10년 차인 제가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승무원 수분크림' 이렇게 화장품 앞에 승무원을 붙여서 광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봤는데요. 장거리 비행이 끝날 때쯤 승무원 얼굴을 보신 적이 있나요? 처음 탑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이 그대로 유지한 것을 볼 수 있어요. 기내가 사막 못지않게 건조한데 장시간 비행 동안 화장이 무너지지 않고 오래 유지되니 화장품 앞에 '승무원'을 붙여서 팔면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죠.
"화장품 뭐 써요? 아유 어쩜. 12시간 전이나 지금이나 화장이 그대로네!"
저 역시 손님들이 종종 물어보곤 합니다. 대체 무슨 화장품을 쓰냐고 말이죠. 입사하고 처음 비행을 시작할 무렵 저도 선배들 보면 신기했어요. 막내시절 화장실 청소를 하며 거울을 볼 때마다 들뜬 메이크업을 고치기 바빴는데 선배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화장이 그대로더라고요.
"사무장님, 파운데이션 뭐 쓰세요? 수분크림은요?"
저도 매 비행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승무원들이 같은 화장품을 쓰는 건 아니겠죠. 선배들이 추천한 화장품을 다 샀더라면 제 화장대는 넘쳐났을 거예요. 추천받아서 써 본 비싼 화장품도 오히려 제 피부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화장이 더 뜨기도 했어요.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사람마다 피부 타입이 다른데 그분한테 잘 맞는다고 해서 저한테도 100프로 좋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비행을 오래 하면서 화장이 오래 유지되는 승무원들의 공통점은요. 특정 브랜드의 화장품을 쓰는 것이 아니고 기초 단계에서 수분 공급을 충분히 해준다는 거예요. 그동안 좋다는 제품 다 써보고 화장품 유목민을 거쳐 결국에는 저만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장거리 비행을 갈 때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수분 공급에 공을 들여요. 수분크림이 흡수되면 한 번 더 덧바른 후에 파운데이션이나 쿠션으로 화장을 하는 거죠. 시간 여유가 되면 아침에 마스크팩을 하기도 하고요.
저도 승무원 준비 시절에 '승무원 핸드크림'을 검색해서 꼭 가지고 다녔답니다. 승무원들이 쓴다는 핸드크림을 바르면 승무원이 될 거라는 기대를 안고 말이죠. 막상 승무원이 되고 보니 그 핸드크림을 쓰는 선배들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요!
아 물론, 승무원들 사이에 유행하는 아이템들은 가끔 있어요. 예전에 같이 비행하는 한 승무원이 향수를 뿌렸는지 꽃밭에 온 듯한 느낌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고 저도 바로 샀죠. 다음 비행에 바로 그 향수를 뿌리고 갔더니 이미 다른 승무원들도 알고 있더라고요. 승무원들 사이에서 입소문은 무섭습니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맡아봤는데, OOO 맞죠?"
흔한 향을 풍기는 사람이 되기는 싫어 그다음부터는 그 향수를 쓰지 않았어요. 가끔 SNS나 홈쇼핑 광고를 보고 아직도 혹 할 때가 있습니다. 나만 빼고 다 쓰는 건가? 나도 사야 하나? 마음이 기우는 순간, 그동안 제 피부에 맞지 않아 버렸던 화장품들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승무원 10년 차인 제가 감히 말씀드릴게요. '승무원 OOO' 광고에 현혹되지 마세요.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2021년엔, 본인 피부에 맞는 화장품, 본인과 어울리는 향수를 찾아 현명한 소비 하시기를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