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유니폼을 다렸다.
나는 10년 차 승무원이다. 코로나 19로 우리 회사 승무원들은 순환 휴직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작년 한여름에 딱 한 달 비행을 하고 5개월째 쉬는 중이다.
작년 까지만 하더라도 휴직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작년에 비행할 때는, 12월쯤에는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런던에서도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여전히 패닉에 빠져있다. 비행기는 여전히 텅텅 비어있고 승무원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항공업계는 여전히 안갯 속이다.
며칠 뒤면 6개월 만에 비행을 가게 된다.
"하아... 비행 가기 왜 이렇게 싫지?"
"6개월이나 쉬었으니까 당연히 출근하기 싫지!"
친구한테 하소연을 하니 오래 쉬고 나서 출근하기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직장인으로 치자면 긴 설날 연휴나 추석 연휴가 끝나고 사무실로 향하는 기분이겠지?
충분히 쉬었으면 이제 일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막상 출근을 하려니 걱정부터 앞섰다. 그동안 바뀐 매뉴얼도 공부하고 완벽히 숙지해야 한다. 복귀를 앞둔 2주 전부터 비행 관련 꿈을 꾸고 있다. 꿈속에서는 이미 베트남도 다녀오고, 파리도 다녀왔다.
복귀를 앞두고 창고에 넣어두었던 캐리어를 꺼내고, 유니폼을 다렸다. 6개월 만에 유니폼을 다리는데 설레기는커녕 착잡한 심정이었다. 분명 내가 몇 년 동안 입었던 사이즈의 유니폼인데 유난히 작아 보였다.
'유니폼 안 맞으면 어떡하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어 유니폼을 다리고 한 번 입어봤다. 기우이길 바랐건만 역시나 내 불길한 예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더 우울해졌다. 살이 조금 쪘는데, 유니폼을 입으니 바로 티가 났다. 휴직기간 동안 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일할 때에 비하면 활동량이 현저히 줄었다.
출근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저녁에 샐러드만 먹었는데, 애석하게도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유니폼이 맞지 않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한 달 전부터 다이어트를 해야 했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꽉 끼는 유니폼을 입고 한 달을 비행해야 한다니.
외국에 비행을 가면 공항에서 손님들이 항상 물어보곤 했다. "항공사 어디야? 유니폼 정말 아름답다! " 그럴 때면 어깨를 쫙 펴고 모델이 무대 위를 워킹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걸었다.
우리 회사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을 보며 승무원을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 멀리서 봐도 빛이 나는 유니폼이다. 일할 때 편한 복장은 아니지만, 전 세계 어느 항공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쁘다.
나에게 유니폼은, 애증의 존재다. 입사하고 9년 동안 정신없이 비행만 하며 살았다. 유니폼만 봐도 설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유니폼 입은 사진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졌다. 비행을 다녀와서 빨래를 하면 유니폼이 마르기가 무섭게 짐을 다시 싸고 비행을 가야 했다. 아마 9년 동안 사복보다 유니폼을 입은 날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때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한 달, 아니 딱 일주일 만이라도 쉬고 싶었다.
지금은 어떤가. 코로나 19 이후에 1년에 많아봐야 고작 4개월 정도 유니폼을 입고 있다. 항공업계가 언제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걱정은 그만 하고 돌아갈 곳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비행해야겠다.
부디 그때까지 살이 빠져서, 꽉 맞는 유니폼이 조금이라도 헐렁해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