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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언니 Apr 02. 2021

승진하기 전에 예지몽을 꾸었다

믿거나 말거나, 꿈이 현실이 된 하루




나는 입사 10년 차, 올해는 과장 진급해이다. 원래는 작년에 진작 정기 승격 발표가 났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지난해에는 진급발표를 하지 않았다. 진급 대상자들은 피 말리는 상태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던 진급발표가 올해 3월 말에 난다고 공지가 올라왔다.  모든 진급 대상자들이 그렇듯 진급발표 날짜가 정해지자 나 역시 잠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온갖 잡다한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보다 힘이 막강해서, 자꾸만 나의 기분을 쳐지게 만들었다.


'이번에 진급을 못하면 어떡하지?' '1년 더 어떻게 버티지?' '토익스피킹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평소에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좋은 면만 보려고 하는 편이지만 진급 앞에서는 나는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직장인에게 월급과 승진은, 전부이기 때문이다.

 

예지몽(豫知夢) :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보여 주는 꿈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그날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꿈에 나온다던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매번 꿈에 나온다. 5년 전, 대리 진급하는 해에 처음으로 예지몽이라는 것을 꾸었다. 나와 내 친한 동기들이 대리로 진급하는 진급 명단을 꿈에서 보았던 것이다. 설마설마했지만, 진급 명단을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내 이름 위에 있는 동기 이름까지 똑같이 꿈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때 알았다. 내가 예지몽을 꾸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후에도 매년 진급 시즌인 4월마다 예지몽을 꾸곤 했다. 친한 후배나 선배를 진급 명단에서 보는 꿈을 말이다. 내가 신기(神氣)가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은연중에 '이 친구는 진급할 것 같아!'라는 평소의 내 확신이 꿈에 반영된 것일까.




2년 전의 일이다. 2019년은 내 친한 후배 L의 대리 진급 해였고 나는 과장 첫 진급해였다. 나는 후배 L에게 내가 대리 진급하기 전에 예지몽을 꿨다고 말했다.


"언니, 나도 대리 진급하는 꿈 꿔줘. 복비 줄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보통 진급 발표 직전에 꿈에 나오니까 꿈에 너 나오면 바로 말해줄게. 우리 둘 다 진급하는 꿈 꿨으면 좋겠다."


그해도 어김없이 진급발표 이틀 전, 예지몽을 꾸었다. 이번에는 진급 명단을 보는 꿈이 아니라 내가 인사담당자와 면담하는 꿈이었다. 나는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서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담당자에게 물었다.


"저랑 L은 올해 진급하나요?"

"L 씨는 대리 진급이 정해졌고요, 그런데 본인은.. 음 아직 인사부에서 심사 중입니다."


 진급 발표 이틀 전인데 아직도 나는 심사 중이라니. 꿈에서 깨고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아 나는 올해 물 먹는구나' 꿈이 현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후배는 대리로 진급하고 내가 떨어지는 꿈을 꿨지만 진급발표 전에 후배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후배가 혹시나 기대했는데 진급이 안될 수도 있고, 내 진급 누락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꿈이 현실이 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후배 L과 나는 진급 발표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둘 다 되면 진급 축하 파티로, 한 명만 되면 축하 겸 위로 파티로 양갈비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진급발표가 나고, 후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언니... 오늘 양갈비는 내가 살게.."

내 꿈대로 후배는 대리 진급을 했고, 나는 과장 진급에 누락된 것이다. 나는, 예지몽을 꾸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2년 후인 2021년 3월, 과장 진급 전에 또 한 번 예지몽을 꾸었다. 진급 발표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지인들에게서 진급 축하한다는 연락을 하루 종일 받는 꿈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진급하려나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므로 꿈을 잊고 진급 발표날도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오후 3시경, 진급발표가 났다. 회사 사이트가 마비돼서 정작 나는 진급 명단을 보지 못했지만 동기들을 비롯한 친한 선, 후배들에게서 축하 연락이 쏟아졌다.


"언니!!!! 축하드려요 사무장님!!"

"고마워! 나 사실 오늘도 꿈꿨어."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괜히 부정 탈까 봐 말 안 했지..."


후배 L에게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다. 내 이름이 있는 진급 명단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내가 진급 날 꿈을 꾼 것처럼 실제로 하루 종일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이 벅차고 행복한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정작 자신은 진급이 누락되어도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축하해준 동기들도 있었다. 본인은 진급이 누락되어도 진급을 한 사람들에게 축하 연락을 하는 마음이 어떤지 잘 알기에, 그들에게 더 고마운 하루였다. 2년 전에 나도 과장 진급에 떨어졌지만 먼저 진급을 한 동기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내가 떨어진 것은 속상했지만 동기들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본인이 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예지몽을 꾸는 사람이다. 부디 내년에는, 친한 지인들의 이름을 진급 명단에서 보는 예지몽을 꼭 꿀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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