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전도사님이 나와 여동생, 남동생에게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주일에 얘기했었다. 약속한 토요일, 우리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집 앞에서 교회 봉고차를 기다렸다. 밖에서 밥을 먹는 것도 드문 경험인데 심지어 그까지 차를 타고 씽씽 달려간다니! 교회는 내가 경험한 공간 중에 제일 좋은 곳이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직접 교회까지 차로 태워다 주고, 점심도 준다. 어린이 예배에서는 간식도 많이 챙겨준다. 교회에 착실히 다니면 달란트를 잔뜩 주고 월말에 달란트 잔치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씩 교회 전도사님이나 선생님들이 우리를 챙겨서 차를 타고 영화를 보러 가거나 맛있는 것을 사주시기도 한다. 집이나 학교와는 다른 따뜻하고 풍족한 느낌이 있다.
잔뜩 신이 나서 셋이서 기다리고 있는데, 전도사님이 우리를 태우러 집 앞까지 왔다. 교회 초등부 선생님까지 다섯 명이 봉고차를 타고 신나게 마을 한복판을 달렸다. 전도사님이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피자 전문점이었다. 나는 한 번도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두근두근 설렜다. 실제로도 피자를 먹으면 광고에서처럼 치즈가 주우욱 늘어날까? 한 번도 치즈의 식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나는 잔뜩 들떴다. 먹고 싶은 걸 고르라는 전도사님의 말에 메뉴판을 보며 한참 망설였다. 이런 건 남동생이 거침없이 제안한다. 나와 여동생은 받는 일에 이렇게 저렇게 주장하는 것을 엄청 부끄러워하는데, 남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불고기 피자가 먹고 싶다고 남동생이 콕 집어 이야기했다. 평소에 먹을 기회가 전혀 없는 새우가 들어간 쉬림프 피자를 너무 먹고 싶었지만, 내 돈 주고 사 먹는 것도 아니고 논쟁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주문이 들어갔고, 투명한 창 너머 주방의 직원이 피자 도우를 돌리기 시작했다. 돌리면 돌릴수록 점점 커지는 도우가 신기해서 계속 들여다보았다. 우리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직원이 피자 도우를 던졌다 잡았다 현란한 손기술을 보여줬다. 곧 피자가 구워져 나왔다. 피자가 구워져 나오는 판도 신기했고, 돌돌 굴려서 피자를 조각내는 도구도 신기했다. 전도사님이 조각난 피자를 삼각형의 도구로 덜어 줬다. 빨리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어 치즈가 쭉 늘어나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처음 써 보는 포크와 나이프로 엉성하게 피자를 썰다가 눈치를 봤다. 조금 썰다가 내려놓자 전도사님이 그냥 손으로 먹어도 된다고 얘기해서 수저를 내려놓고 손으로 들고 먹었다. 피자를 살짝 베어 물고 쭈욱 늘려봤다. 치즈가 쭉쭉 늘어나다가 뚝 끊겼다. 끊기지 않게 적당히 물고 늘어뜨리는 것이 어려웠다. 광고에서처럼 치즈를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 새로운 경험에 들뜬 내 마음처럼 유난히 톡톡 터지는 콜라도 재미있었다.
교회 선생님들과 피자집에서 즐겁게 놀고 집에 돌아왔다. 늦은 오후 배고파서 냉장고를 열어보다 2리터짜리 콜라가 눈에 들어왔다. 피자집에서 시원하게 느끼함을 잡아주던 콜라가 생각나 컵에 따라 마셨다. 집에서 먹는 콜라는 매장의 톡 쏘는 콜라처럼 탄산이 강하지 않다. 아마 항상 누가 꺼내 두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놓는 것을 까먹어서 김이 많이 빠진 탓일 것이다. 피자랑 같이 먹는 콜라가 완벽한 조합이었는데. 늘어나는 치즈도, 톡톡 터지는 콜라도 언제쯤 다시 먹게 될 수 있을까?
저녁이었다. 드라마 속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함께 고급진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우아하게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스푼에 돌돌 말아먹는 면, 테이블에서 직접 썰어먹는 스테이크. 나는 파스타나 스테이크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내가 크면 교회 전도사님이 데려다주지 않아도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을 수 있을까? 저런 건 한 그릇에 만 원 가까이하지 않나? 넘어가나?
"엄마, 저런 건 얼마 해?"
"몰라, 안 가 봐서. 저기서 먹으면 몇만 원 하지 않겠나."
내가 크면 만 원짜리를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지금은 당연히 내 손에는 만 원짜리가 없고, 엄마의 지갑에도 천 원짜리 몇 장만 있다. 교통카드에 돈이 없을 때를 대비한 비상금이다. 엄마가 출근할 때 꼭 필요한 교통비보다 훨씬 큰돈인데, 내가 크면 파스타 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