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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Apr 03. 2021

13살: 병원비는 천오백 원

 감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았다. 처음에는 코가 시큰한 게 감기에 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뒤에는 머리가 약간 아프고 목에 뭔가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 코가 잔뜩 막히고 한쪽 콧구멍에서 누런 콧물이 흘러내렸다. 눈을 뜨기도 전부터 머리가 띵하고 아파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저학년일 때는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가는 날이 잦아서 친구들의 시선을 많이 받았는데,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친구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것이 싫어 쉽게 결석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등교하기 한 시간 반 전부터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감기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천 원짜리 한 장과 오백 원짜리 한 개를 급하게 넘겨주고 일하러 쏜살같이 나갔다. 엄마가 바빠서 병원에 가야 할 때는 엄마에게서 돈만 챙겨 받고 언니랑 함께 또는 나 혼자 병원에 갔다. 동생이 아플 때 내가 동생을 챙겨서 병원에 가기도 했다. 엄마가 준 돈 중에 지폐 한 장은 병원용, 동전 한 개는 약국용이다. 돈을 가방 필통 안에 잘 챙겨 넣었다. 학교를 마치면 바로 병원에 가야지.


 오전에는 머리가 띵하고 콧물이 계속 나서 교실에서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가 되자 괜찮아졌다. 집에 있으면 유독 콧물과 재채기가 많이 나는데, 집에서 벗어나 오래 있으면 자연스레 낫곤 한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아, 나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해!"

 무심코 필통 안에 돈이 잘 있는지 챙겨보려고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 열었다.

 "돈이 그대로 있구나. 나 오늘은 병원 때문에 저쪽으로 먼저 갈게."

 친구가 필통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돈이 그거 가지고 돼? 병원비 생각보다 비싸잖아."

 "엥? 겨우 감기인데 이것보다 비싸다고?"

 친구는 내가 혼자 병원에 가 본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조언했다.

 "천오백 원 갖고 있는 것 아냐? 집에 들러서 돈을 더 챙겨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 집에 가도 돈이 없어. 예전에도 이만큼 가지고 병원에 갔다 왔는데 뭘."

 "그걸로 병원비는 어떻게 내더라도, 약국에 가서 또 돈을 내야 하잖아. 어느 병원이 이렇게 싸게 받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 친구와 인사하고 나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친구의 표정이 머쓱한 감정과 함께 머리에 박혔다.


 내과에 들어가자 접수과에서 기본 정보를 작성하게 했다.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써 내자 간호사 언니가 받아 들고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잠시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병원 진료는 특별한 게 없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의사 아저씨가 기다란 막대로 입 안을 들여다보고, 가느다란 기구를 콧구멍으로 쑤욱 넣어서 치익치익 무언가 뿌려댔다. 그러고 나가서 처방전을 받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진료실을 나와 잠시 대기하자 접수과에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혹시 친구가 말한 것처럼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어쩌나 하고 잠시 두근 했다.

 간호사 언니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 이야기했다.

 "오늘은 천 원만 주고 가면 돼요~"

 역시나, 항상 병원에 가면 병원비는 천 원이었는데. 친구는 좀 더 아픈 병을 가지고 병원에 갔던 게 아닐까?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쉽게 아프곤 하는데, 병원비가 천 원보다 비싸면 어떻게 아플 때 병원에 챙겨 갈 수 있냐는 말이다. 나는 안도하며 병원에서 나왔다. 만에 하나 천 원보다 더 비싼 값이 나왔다면 꼼짝없이 병원에 붙잡혔을 것이다. 어쩌면 겨우 감기 때문에 엄마가 퇴근하고 돈을 더 챙겨서 나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병원 1층에서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줬다. 약국에서는 약을 만들어 내주며 내 이름을 확인하곤 500원을 달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천오백 원으로 병원 진료를 받고 약도 샀다. 내 친구는 대체 어느 병원을 다니길래 그런 말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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