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기부터 엄마가 퇴근한 후 집은 매일이 전쟁터였다. 금전적 결핍이 있는 가정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 소통도 결핍하다. 이런 가정에서 서로의 요구가 충족되려면 고성이 오고 가는 것이 필수였다.
고작 내 공간 한 칸이 필요해서 거실에 쌓아둔 물건들을 정리하자고 말을 꺼낸 거였는데, 대화는 10분을 채 잔잔히 흐르지 못하고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는 클라이막스에 치달았다. 엄마가 늘 내 말에 귀를 막고 있어서 그렇다. 무슨 말을 해도 귀담아듣지 않고 귀찮은 듯 윽박질러 내 요구를 눌러버리려는 엄마가 답답했다. 내가 사용할 공간을 만들어도 괜찮겠냐는 말을 반도 읊기 전에 물건을 옮겨둘 곳이 없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창고에 넣어두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하면 네 공간이 대체 왜 필요하냐고 이야기한다. 안 그래도 집이 좁아서 힘든데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냐고 쏘아붙인다.
나야말로 집이 좁아서 힘들다. 집에서 시험기간에 책 펼쳐두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 두 동생들에게 치이지 않고 편하게 앉아서 쉴 공간. 그냥 나만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칸막이를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언니 방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저기 쌓아둔 물건들만 정리해서 창고에 넣어두면 상 하나 펼쳐둘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길 것 같은데. 뻥 뚫린 공간이지만 나의 전용 공간이라는 것에 만족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정리하겠다고 해도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또래 친구들이 흔히 부모님에게 요구하는 최신 휴대폰도 아니고 엠피쓰리도 아니다. 돈 한 푼 드는 일도 아니었고, 작은 공간만 있으면 됐다. 또 논점에서 벗어나 사춘기냐고 몰아붙이는데, 이럴 때마다 벽이랑 이야기하는 기분에 속이 곪아 터질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 큰 소리로 묵살하고, 그럼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더 큰 소리를 냈다. 서로의 소리를 소리로 덮었다. 반복될수록 집이 떠나가라 큰 소리를 내게 되었다. 엄마는 내 마음 한 자락도 읽어주지 못하고 내 말 좀 들어 달라고 소리 지르고 우는 나를 정신병자 보듯이 한다. 남사스러워서 살 수가 없단다. 동네에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단다. 맞다. 동네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엄마와의 대화는 항상 내가 제어할 수 없는 폭탄이 되어버렸고, 섞이고 반응하지 않으려 애를 써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늘 시간이 지나 거대한 반응을 일으켜 버리고 말았다.
우리 동네에 폐지 줍는 할아버지는 말을 못 하신다. 초등학생 때는 오며 가며 인사를 했는데, 조금씩 인사가 쑥스러워져서 지금은 그냥 마주치면 눈인사만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다닌다. 매일 할아버지가 커다란 수레를 들고 종이를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할아버지의 수레는 저녁 시간에 항상 우리 아파트 동 앞에 놓여 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 날 잠시 학교 준비물을 사러 다녀오는 길에 할아버지의 수레에 담배꽁초랑 쓰레기가 잔뜩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우리 학교 골초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간식을 먹고 버려둔 것 같았다. 근처 놀이터에서도 그들이 그렇게 모여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 밤,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이 시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멈추지 않는다. 커다란 바퀴가 구르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함께 났다. 이 소리가 어느 집으로 갈까 조용히 집중하는데, 우리 집 앞에서 덜컥 멈췄다. 무슨 일일까? 내 마음도 같이 덜컥 멈췄다. 현관문 앞에서 덜컹덜컹 탈탈 소란이 일었고, 엄마가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화들짝 놀라더니 여기 버리는 거 아니라고 소리쳤다. 상대방이 무어라 맞받아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우리 층에 내린 사람은 폐지 줍는 아저씨였다. 커다란 수레를 들고 왜 우리 집까지 와선 현관 앞에 쓰레기를 탈탈 털어놓은 거지? 엄마가 우리 집에서 버린 쓰레기가 아니라고 버럭버럭 화를 냈지만 아저씨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더 화를 냈다. 아저씨는 엄마와 소리를 지르며 실랑이를 벌였고, 우리 집 현관 앞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꽤 소란스러웠을 텐데 우리 층 여덟 가구 중에 밖으로 나와보는 이웃집이 없었다. 하긴 집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울 때도 그들은 소란을 감내했겠지. 아저씨는 왜 우리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온 걸까? 우리 집이 소란스러워서 많이 미웠던 걸까? 우리 층 이웃들도 우리 집이 미워서 폐지 줍는 아저씨가 쓰레기를 버리는 상황을 가만히 내버려 뒀던 걸까? 우리 집에 돈이 있어서 마음에 여유가 있고 엄마가 나를, 내가 엄마를 사랑으로 대했다면 좀 달라졌을까? 나 이 세상에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나? 엄마조차도 나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는데,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부모님 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나 앞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살 수 있을까? 지금처럼 쓰레기통으로 사는 게 마땅한 사람인 게 맞을까 봐 두려웠다. 서러워 울고 싶은데 혼자 조용히 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학교에 친구들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누구 한 명에게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나는 몸도 가난한데 마음도 가난하다. 사랑이 메마른 마음에 갈증이 나 현관이 시끄러운 와중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내가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