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방학에 치러야 할 가장 큰 이벤트는 중학교 입학 전 교복 구매이다. 하굣길에 온 교복 전문점에서 홍보를 나와 엘자 파일이며 거울이며 여러 가지 홍보 물품을 나눠줬다. 받은 파일의 표지에는 재킷에 숨어 있는 시크릿 지퍼로 허리 라인을 살릴 수 있다는 광고가 있었고, 거울의 뒷면에는 음악방송 프로그램에서 무대를 휩쓰는 아이돌 그룹이 교복 모델로 예쁘게 찍은 사진이 나와 있었다. 더불어 받은 작은 책자에는 교복 치마허리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후크 처리와, 재킷에 비밀스럽게 내 소지품을 넣어 다닐 수 있는 안주머니까지 소개되어 있었다. 휘황찬란한 광고에 눈이 돌아갔다. 화려하게 광고할수록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저렇게 좋은 옷을 입을 수 없으니까.
교복값이 하늘을 치솟았다. 유명한 3개 교복 전문점이 한창 가격을 올리며 과점하고 있던 때였다. 교복 한 벌 세트에 30만 원이 훌쩍 넘어가니 엄마는 도무지 교복을 제 값 주고 살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교복 기업의 과점 행위가 심각한 것을 알고 학교에서도 값싼 브랜드를 이용해서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엄마가 학교에서 보내준 공동구매 안내장을 보자마자 이걸로 신청해야겠다며 거침없이 신청서를 작성해 내려갔다. 나도 이름 있는 교복 전문점에서 와이셔츠 안감에 체크무늬가 있고 치마 주머니에 깔끔하게 지퍼 처리가 되어 있으며, 로고가 예쁘게 박힌 교복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공동구매 안내장에 적힌 7만 5천 원이라는 가격을 보고 엄마를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일하러 다녀와서 온몸이 쑤신다고 힘들어하는 엄마를 매일 보기 때문에 비싼 교복을 사 달라는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안감이 예쁘게 처리되지 않은 와이셔츠 소매 정도야 뒤집어 걷는 일이 없으면 크게 티가 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느 브랜드의 교복을 살 것인지가 6학년 연말 장안의 화제였다. 친구들이 어느 브랜드는 원단이 좋고, 어느 브랜드는 입체 패턴으로 라인을 잘 살렸으며, 어느 브랜드의 안감 체크무늬가 가장 예쁘다고 이래저래 교복에 대해 분석한 사항을 줄줄 늘어놓았다. 나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능청 떠는 방법도 잘 몰라서 어디서 살 거냐고 물어보는 친구들 질문에 우물거리며 여기가 좋아 보인다고 어리숙하게 대답했다.
친구들이 교복점을 왔다 갔다 하며 여러 교복을 입어보는 기간 동안 나는 공동구매 매장에서 학교로 신청 학생들의 신체 사이즈를 재러 오는 날을 기다렸다. 방과 후에 남아서 신체 사이즈를 재고 얼마 되지 않아 교복이 도착했다. 기대가 없었던 만큼 설레지도 않았다. 매장에 찾아가 수많은 사은품과 함께 받아가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내 이름이 적힌 종이가방을 직접 찾아가야 했다. 투명하고 예쁜 로고가 박힌 가방이 아니어서 실망스러웠다. 집에 와서 교복을 꺼내 보니 색깔이 원래 교복보다 조금 짙어 보였다.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입어 봤을 때 허리가 많이 크긴 했지만 접어 입어도 티가 안 나서 괜찮았다. 와이셔츠는 안감에 체크무늬나 가슴에 로고가 없었다. 이럴 거면 엄마가 면접 보러 다닐 때 구해두고 지금은 안 입는 흰색 와이셔츠를 입을 걸 그랬다.
첫 입학식 날, 깔끔하게 교복을 입고 들어갔는데 교복 색이 유난히 짙은 아이들이 보였다. 나처럼 교복 공동구매를 한 아이들이었다. 나도 저렇게 티가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부터 입고 있는 옷이 부끄러워졌다. 교실에 들어와서 나랑 비슷하게 짙은 교복을 입은 친구가 누가 있는지 둘러봤다. 짙은 색 교복을 입은 두 명의 친구들을 보며 조금 안도했다. 나 혼자만 입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색감 차이는 모든 브랜드에서 미묘하게 존재하긴 했다. 브랜드마다 색깔이 달랐지만 공동구매 교복이 유난히 짙어 보였다. 와이셔츠 안감은 목 카라가 접히는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야 체크무늬 배색이 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공동구매 와이셔츠에는 체크무늬 배색이 없다. 잘 드러나지 않는 교복의 같잖은 부분들에 입학식 내내 집중하며, 누가 나처럼 이 미묘한 차이를 알아챌까 잔뜩 기를 죽이고서 새로운 공간에서의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