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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Feb 21. 2021

10살: 아픈 건 적응한다

 "엄마, 나 신발이 너무 꽉 끼어."

 "신발 산 지가 언젠데 벌써 바꿀 때가 됐다고? 무슨 발이 이렇게나 빨리 커. 그래도 아직 들어가지? 안 들어갈 때 되면 얘기해. 그때 바꾸자."

 엄마가 큰 목소리로 발이 왜 이렇게 빨리 자라냐며 유난을 떨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새 신발을 산 지 반년도 안 되었는데 일부러 크게 맞췄던 신발 안에 금세 발이 꽉 들어찬 것이었다. 천 재질인 신발은 주욱 당겨서 신으면 항상 발이 들어가긴 했다. 일단 발이 들어가고 나면 답답한 느낌이 있어도 걸을 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발이 한 번에 쑤욱 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커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불편함이 계속 더해지더라도 금방 적응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크지 않았다.


 내가 가진 신발은 실내화 말고는 딱 한 켤레였다. 엄마가 새 신발을 사줄 때쯤 되면 원래 가지고 있던 신발은 다 낡아서 물려주지도 못할 상태가 되어 그냥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20분가량으로 가깝진 않아서 매일 걸어 다니느라 신발은 금방 해지기 일쑤였다. 밑창이 다 닳아 뒤꿈치 쪽에 구멍이 나서 비가 올 때는 양말이 흠뻑 젖기도 했다. 여름에는 샌들을 신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운동화는 계절 관계없이 신을 수 있지만 샌들은 겨울에 신을 수 없어서 엄마에게 사달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꼭 끼는 신발을 계속 신고 다니던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발바닥 앞쪽의 바깥 부분이 걸을 때마다 거슬렸다. 발이 꽉 끼어서 감각이 예민하지 않았지만, 아픈 것 같았다. 그 다음날 학교에 가는 길, 발바닥 바깥 부분이 땅에 닿으면 송곳에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신발에 압정이 들었나? 최대한 발 안쪽으로 걸으려고 애를 쓰며 학교에 도착했다. 실내화로 갈아 신을 때 신발 안쪽을 확인해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신발을 갈아 신는데 실내화 바닥이 딱딱해서 너무 아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신발 안에 압정이 들어있는 듯 아파서 서둘러 걸었다. 그러다 작은 돌부리를 발바닥 바깥쪽으로 밟고는 깜짝 놀라 후다닥 발을 뗐다. 답답한 신발을 벗어던지고 발을 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간에 주저앉을 수도 없고 신발을 벗어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절뚝이며 힘겹게 집으로 돌아왔다.


 티눈이 생긴 것이었다. 신발 밑창의 가장자리에 닿는 바깥쪽 발바닥에 생긴 티눈이었다. 피부 표면이 아픈 게 아니라 발바닥 깊은 곳까지 송곳으로 찌르는 듯이 아팠다. 맞지 않는 신발을 오래 신고 다녀서 그런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아프다고 이야기하자 왜 이제야 그 이야기를 하냐며 시장에서 오천 원 짜리 신발을 넉넉한 사이즈로 사 주었다. 신발을 바꾸고 나서도 아픈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프면 증상에 알맞은 병원에 찾아가야 한다고 수업 시간에 배웠다. 피부과를 가야 하는 건 알겠는데, 병원이 운영하는 시간 동안 엄마는 늘 일을 하고 있어서 데려가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냥 참을 만했다. 그래서 그냥 발바닥 바깥쪽이 바닥에 닿지 않게 조심조심 걸었다. 한 번씩 발을 잘못 디뎌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나니 아프지 않게 발을 잘 딛는 노하우도 생겼다.


 새로 산 신발이 딱 맞아질 때 즈음, 시간이 많이 지나서 티눈이 딱딱하게 굳어 감각이 무뎌진 채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는 오래 걸어 다녀도 더 이상 티눈 때문에 발이 아프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든, 걷는 방법을 연구해서든 아픈 건 적응하게 된다. 아픈 건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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