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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Feb 16. 2021

9살: 환경 미화원은 안 되고 싶어

 엄마가 통장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했다.

 "너희 대학은 못 가겠다."

 엄마가 들고 있는 통장에 찍힌 돈은 20만 원 남짓이었다. 엄마가 일, 십, 백, 천, 만, 십만 하며 세어서 알 수 있었다. 대학 등록금이 100만 원이 넘어간다는데, 10년 뒤에 너희 대학은 못 보내겠다고 엄마가 탄식하듯 이야기했다. 대학을 못 간다는 말이 남들처럼 살지 못한다는 말과 같게 들렸다. 나, 남들처럼은 살 수가 없구나. 대학을 못 가게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살 수 있을까? 평범한 회사원은 안 될 것 같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학에 가니까, 회사에서도 이왕이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일하게 하지 않을까? 환경 미화원 정도는 될 수 있을까? 왜, 티비에서 아줌마들이 저렇게 안 되려면 열심히 살아야 해.라고 말할 때 가리키는 그 사람 말이야.

 (직업에 귀천이 없는 것을 모르는 철없는 아홉 살의 생각이었다. 사실 환경 미화원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직업과 다를 것 없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고,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나 대학 못 가?"

 "서정이는 똑똑하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교대를 가렴. 교대는 등록금이 싸니까, 그 정도는 엄마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졸업하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테니까, 안정적이기도 하잖아."

 교대를 목표로 하면 대학에 갈 수 있구나. 교대에 가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구나.


 엄마는 이혼 절차를 끝낸 후 재산 분할로 받은 집을 팔아 전셋집으로 옮겨갔고, 집을 팔고 남은 돈이 담긴 통장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얼마 동안이나 먹고살 수 있을지 계산하곤 했다.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아서 엄마는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열한 살 언니와 의논하기도 했다.

 "애 넷 딸린 이혼녀를 어디서 받아 주겠니. 엄마가 얼른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 돈이 떨어지면 그때는 너희가 시설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엄마가 자주 보러 갈게."

 이혼 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은 듯 엄마의 걱정은 날로 쌓여갔다. 집에 있는 동안 돈이 없다고 혼잣말로 한탄하는 일이 잦았다. 시설에 들어가다니, 정말 남들과 다른 삶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엄마와 아빠가 있는 집에서 학교를 다닌다. 돈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남들처럼 살기 어렵게 하는 것이구나.


  이사 때문에 새 학기에 맞추어 전학 간 학교에서 학기 초 활동으로 교실 뒷판에 붙일 나를 소개하는 꽃을 꾸몄다. 동그랗고 노란 꽃술 그림 안에 나를 소개할 수 있게 이름과 생일 또 여러 가지 항목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름과 생일 아래 장래희망 란에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써넣었다.

 키가 짧아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숨소리도 내지 않는 듯 조용히 책에 빠져들던 나는, 수업 시간마다 앞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학교의 일과를 이끌어 나가고 열심히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는 선생님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 애써 모른 척하며, 그 이후에도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장래희망을 꿈꾸어 왔다.

 나도 교실 뒷판에 붙어있는 수십 개의 꽃에 적혀 있는 경찰이나 연예인, 변호사처럼 다른 친구들이 꿈꾸는 일을 하고 싶다. 비싼 대학에 가야 하는 경찰이나 변호사는 안 되고, 예쁘지 않고 춤을 잘 추지 못해서 연예인도 안 되고, 엄마가 교대 등록금은 낼 수 있다고 했으니까 나는 무조건 선생님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어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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