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겨울이 보이니? ​

홈스쿨 미술이야기

by 뽀르파트재


아들, 겨울이 보이니?


“엄마,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겨울 같아요”
“아~그래? 아들 정말 근사한 생각을 했구나”


내가 아파트 홈스쿨로 미술을 가르칠 당시 아이와 집 앞 놀이터에 갔을 때다.

낮은 철봉에 매달린 7살 유치원생 아들이 오래된 고목을 보고 아르침볼도를 불러들였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갈 무렵 엄마의 손길이 절실한 시기에 나는 직장을 놓고 고민했다.

결국 양육에 마음이 더 기울었고 같은 유치원을 보내는 아이 엄마의 권유로 미술수업을 시작했다.


거실을 미술 작업실 삼아 책상과 게시판을 꾸미고,

아파트 100개의 게시판에 광고지도 붙이는 열정으로 하다 보니,

한 두 명씩 아이들이 늘어났고 나를 믿고 보내는 학부모님에게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특별한 미술수업을 위해 한 달에 한 명씩 화가를 선정해서 연계 수업을 했다. 12월에는 이탈리아의 화가인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수업을 했다. 기존 생각의 틀을 깬 괴기한 환상화를 비롯해 과일, 채소, 책, 새 등의

흥미로운 재료로 얼굴을 형상화한 인상적인 화가로

아이들과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우 재미있고 신선한 수업이 되었던 화가였다.


홈스쿨 미술수업에서 내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창의적인 사고와 표현 할 수 있도록 하되 자연과 친화된 소재를 사용하는 것과 장소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날씨가 허락되면 집 주변에 나가 나무나 풀, 꽃들을 보고 만지고 촉감을 느끼고 그리며 표현하게 하였다.


때론 커다란 봉지와 집게를 들고 우비를 입고 집 주변 숲길이나 아파트 꽃밭을 거닐었다.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 조각이나 화단에 버려진 돌을 줍거나 어디 그뿐인가? 대부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유아~초등학생이었기에 나는 위생에 더 신경 쓰기 위해 자연물 등의 재료는 꼭 깨끗하게 세제로 닦은 뒤 햇빛에 말려서 사용했다.

어쩌다 가족과 바닷가라도 나가면 여전히 내손엔 조개 나부랭이들이 한 봉지씩 들려있기가 일쑤다.

그것도 모자라 같이 간 가족들에게 작품에 필요한 재료들의 수거를 암묵적으로 요청하곤 했다.

정말 못 말리는 직업의식은 끝이 없었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도 나무 스틱바를 씻어서 사용했으니 내 주변엔 재미있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유독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보니 주변에 일회용품 사용이 참 불편했다.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자원낭비도되고 환경에도 안 좋으니 재활용품 사용이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 속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덕분에 지인이 혹시 톱밥은 필요 없냐고 혹은 단추를 한가득 작은 박스에 모아서 내손에 안겨주는 등

나의 지원군은 해가 갈수록 늘어갔다.




홈스쿨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다. 집을 공유하였기에 가족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무엇보다 집과 직장이 분리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미술수업이다 보니 물감 재료 사용이 많아 화장실은 늘 물감 범벅이 되어 수업 후 거실과 화장실 청소와 마무리는 내 몫으로 남았다. 반면에 따로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점과 아이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내가 원하는 수업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힘든 중에도 홈스쿨은 계속되었다.

한 번은 힘든 몸을 쉬려고 침대에 푹 퍼져있는데 밖에서 똑똑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아파트 현관 문구멍으로 보며 누구세요? 했더니 상담을 하러 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잠시만요”를 던져놓고 미친 듯이 주변정리를 하고 상담을 한 적도 있었다.

보통은 수업 상담은 사전예약제로 하였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학부모님에 난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홈스쿨 미술은 아이들과 가족 간에 감수해야 할 순간들이 많았고 나는 나대로 한계를 극복하려고 무던히 애쓰며 나가는 과정이었다. 나의 수고와 번거로움과 비례하여 홈스쿨은 가정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기에 과연 잘하고 있는 선택일까?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시기에

놀이터에서 아들의 말은 나의 그간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 등교를 하지 못하게 되어 원하지 않았던 홈스쿨을 하게 된 부모들의 고충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이러한 유대감도 얻을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아니한가?



누군가는 앙상한 나무로 혹은 흉물스러운 나무로 기억될 겨울나무에게 먼 나라 이탈리아 화가 아저씨를

불러드릴 감성과 지혜를 주니 참 고마운 일이다. 힘들게만 느꼈던 미술 수업이 드디어 빛나는 기분이다.

나는 그날 밤 아들이 전해준 따뜻한 마음을 그림에 옮겼다.


“아들, 겨울이 보이니?”


아들, 겨울이 보이니? 글.그림:뽀르파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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