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의 비밀을 한 가지 알고 있다.
나는 이 세상의 비밀을 한 가지 알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되기까지 수많은 좌절과 고통이 동반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지나간 시간들이 알려준 귀중한 선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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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시의 세계'와 '수의 세계'가 있다.
'시의 세계'란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이 어느날 산술불가한 가치를 터뜨리는 곳.
'수의 세계'란 논리정연한 효율과 예측가능성 안에서 꼼꼼하게 1원 2원을 누적해가는 곳.
전통적인 가족의 구성에서
어머니는 '시의 세계'를 역할 하고
아버지는 '수의 세계'를 임무 한다.
알게 모르게 인간은 두 세계를 모두 바라보며 성장한다.
성인이 되었을 때, 기로에 선다.
어느 쪽으로 살아갈 것 인가.
나의 젊음의 시간을 어디에 아로받칠 것인가.
짧은 삶을 살아보니,
그것이 기로가 아니었더라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본인이 특출난 무엇의 인간이 아니라면
두 가지를 동시에 잘 운영하는 길이 베스트 더라.하는 슴슴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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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수와 시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
수의 언어는 대개가 비슷하다.
합의된 원리원칙 아래서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 언어를 잘 독해하고 룰에 맞추면 수를 키울 수 있다.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의 주관을 버리지 못해서 수를 얻지 못한다.
수를 얻는 왕도는 나를 내려놓고 남의 기준을 십분 수용하는 것이다.
누구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수를 만든다.
그런데 말이다. 시는 다르다.
시의 언어는 사람마다 문법이 다르다.
누구에게 시는 사랑이고 가족이고 음악이고 음식이다.
그리고 내게, 시는 글이고 꿈이고, 커피와 종이로 뭉쳐진 한낮이다.
어느날 친구가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꺼낸다.
- '수의 세계'와 '시의 세계' 쯤은 이젠 알고 있잖아? 그런데 하나 더 비밀이 있어.
- 뭔데?
- 수를 시로 하면, 가장 강하다는 사실이야.
- …
- 꿈꾸는 자를 이기는 엑셀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더라고.
- (나는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봤다.)
- 그리고 반대로 말이야.
시도 수로 하면 금세, 수의 기준으로 높아질 수 있지.
그런데 그건 과연 수일까? 시일까?
- 재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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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세계를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수를 세우고
밤과 주말에는 시를 쌓는다.
별 수 있나.
내겐 백마탄 왕자님도 없고 연금복권의 행운도 없다.
그저 건조한 마음으로
이건 괜찮았네 이건 좀 별로였네
셀프 평가를 하며 시간을 누적해나갈 뿐이다.
작가는 많은 이들이 작가라 불러줄 때 비로소 작가가 된다.
그러니까 내가 작가임을 증명하고 수긍되어야 한다.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게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작가라는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게 글의 체급을 단련해나갈 뿐이다.
이젠 내게 쓸만한 '수의 세계'가 구축된 덕분에
나의 '시의 세계'를 스스로 어느정도 후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시가 시일 수 있게 부단히 수를 경영한다.
언젠가는 시가 보답하겠지.
수를 시로 할 수 있게 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