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원 Jun 27. 2021

태도의 문제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어릴 적부터 집  구석에  런 문장이 새겨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예수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크리스천이었던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서 가져다 놓으셨나보다.


아주 오랫동안 이 글자들을 벽지의 일부도 되는 것처 별 생각없이 마주했다.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액자를 바라보며 마음에 새기는 시늉도 했었던 것 같다만,  글쎄. 보통은 그냥 성경에 나와있다는 그럴싸한 말이겠거니 하고 액자 앞을 지나친 날들이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이 넘는다.


그렇게 십년, 이십년이 지나 내 나이 서른이 된 지금,  근 삼십년만에 집에 있지도 않은 액자 속 글귀를 진지하게 생각하다니. 새삼 남다른 기분이 드는데, 그 명문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내 마음 속에 새겨져 함께 지내왔지만, 그걸 알아차릴만큼 내가 머리가 자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 때나 지금이나 종교를 믿지 않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예수의 가르침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많은 사람들이 이 문구를 가슴 속에 담아두는지를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 살았다곤 할 수 없지만 나름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습득한 지혜들 중 하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고 절대적인 것이 없다 인간의 편협한 시각으로 무언가에 대해서 감히 '객관적' 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생각에 예수는 사람들이 매사에 불만을 품고 처지를 비관하는 것 보다는 현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끊임없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의 태도 가질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객관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마음 먹기에 따라서,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삶은 축복이 될 수도, 고통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되고 기왕 사는거 고통보단 축복 속에서 사는게 좋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라고들 말한다. 사람의 마음과 육신은 너무나 연약하여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너무나 많다. 가끔은 벌을 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인생은 쓰고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픔을 피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실제로 나도 아주 오랫동안 삶을 형벌처럼 여기며 살아왔고 이게 사는 건지, 죽지 않으려 버티는 건지 궁금해하던 날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많은 것이 바뀐다.

어린시절 무서운 형벌이었던 어머니의 회초리가 사실은 지극한 사랑이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처럼, 고통이라고만 생각하던 것들이 축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태도를 바꾸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면 세상살이가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지 않나?


고통으로 가득찬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긍정적 사고를 강요하는 건 아주 미련하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 삶이 주는 것들에 감사하고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다면, 그리고 더욱더 내 행복을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린 진정으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수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닐까? 난 이제서야 알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