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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빈 Sep 16. 2024

열린 결말


반전 소설을 참 좋아했다. 내가 상상하던 결말로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내용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워했다. 그래서 추리나 공포소설처럼 어느 정도 반전 클리세가 있는 장르를 즐겨보기도 했다. 


조금 커서는 특이한 주제를 다루거나 일상에 있을법한 내용을 참신하게 풀어가는 내용을 좋아했다. 마치 나도 경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나 쓰네카와 고타로의 멸망의 정원과 같은 글들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취향을 따져본다면 열린 결말인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지 않은 결말로 흘러갈 것이면 차라리 열린 결말로 놔두고 충분히 상상하게끔 만드는 게 좋다. 이게 왜 그런지 곰곰이 따져보니 이유가 있었다. 너무도 판에 박힌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릴 때처럼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이다고 판단하며 책을 읽다가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가면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특히 드라마가 더 심했는데, 나 혼자 캐릭터를 분석하고 이런 흐름이니 이런 결말이 나올 것이라고 그걸 기대하면서 끝까지 봤다. 물론 내 추측이 항상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걸 겪으면 기분이 좋지 못했다. 


내가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결말을 생각하고 드라마나 책을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자라면 독자의 생각이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상상력을 펼치고 싶다. 하지만 평범한 어른으로 커버린 지금은 그런 상상력을 펼치기가 어렵다. 결국, 나는 만족하기 위해 열린 결말인 작품을 보는 것이다.  


상상력이란 경험하지 않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능력을 뜻한다. 그리고 나는 상상하는 것을 즐겨한다. 갑자기 내가 다른 시대로 떨어진다면, 내가 어떠한 능력이 있다면, 내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면, 나아가 그냥 사람들과 대화를 한 장면에 대해서도 다르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벌어진 일이 아니다 보니 혼자만의 해석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데, 뭔가 간접경험을 하는 기분이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반전 소설을 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외치는 독자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똑똑한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일상을 색다르게 풀어내는 글을 쓰고 싶다. 공감과 위로,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힐링소설 치고는 평범한 일상이 없다. 우리가 흔히 평범한 삶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서 쓴 내용이다. 그래서 가장 공감되고, 힐링되는 글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바라는 내용이니까. 열린 결말의 소설을 쓰고 싶다. 캐릭터 간 관계가 어떻게 끝나고, 상황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는 걸 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가 새롭게 태어났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열린 결말은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어떠한 결괏값을 내야지만 독자를 기만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도 결말이 없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인데, 이미 엔딩을 정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결국 열려있는 결말이야말로 내가 가져야 하는 마음이다. 어떻게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하루를 보낼 것인가. 나는 어떠한 엔딩을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이것저것 생각해 봤을 때, 우리는 항상 타인의 시선에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해피엔딩으로 삶을 끝냈어도, 타인이 봤을 때 썩 비굴한 인생이었다고 한다면 내 인생은 비굴한 것이다. 어느 대회에 나가서 장려상을 받아 행복하더라도 남이 우수상이 아니라 아쉽겠네라고 생각하면 나는 아쉬운 결과를 얻은 것이다. 


바라건대, 이 시선에서 벗어나야지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대로 살 거야, 내 갈길을 간다라는 마음은 아니더라도 선택의 기준, 삶의 방향성만큼은 타인이 아닌 내가 정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열린 결말이 좋다. 내가 그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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