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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경 Jan 29. 2024

우리가 왜 당신 말에 따라야 하나요?

팀원들이 왜 나의 제안에 따라주어야 할까?

"팀원 여러분, 이제부터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보아요."


"팀원 여러분, 저희 이런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해보아요."


"팀원 여러분, 앞으로 저희 작업 속도를 더 높여볼까요?"


...
왜요?




있는 힘을 다해도 모든 것이 물거품되는 매니징 방법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우선 제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았습니다. 실력과 노력. 이 2가지는 프리랜서였던 저에게는 실패를 안겨준 적 없는 필승 재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밤낮없이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효율적이어질 수 있게 시스템을 개선할 안을 짜고, 더 빠르게 업무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찾아 새로운 워크플로우를 고안했습니다.


  이 방법대로 하면 단기간에 모두가 해야할 일의 양을 줄이면서 작업물의 퀄리티는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제가 맡았던 팀은 제가 실무를 해왔던 분야였기 때문에 새로운 워크플로우와 업무 시스템을 저스스로 직접 테스트해보았고, 테스트 결과 기존대비 1/4의 시간동안 기존과 비슷한 퀄리티의 작업을 완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의기양양하게 결과를 보고 드린 후, 고가의 프로그램을 구매했고 팀원들에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작업하기를 제안했습니다.




왜 아무런 변화가 없지?


 하지만 프로그램에 충분히 적응할만한 시간이 지나도 팀원들의 효율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분석이 잘못되었나? 내가 짠 워크플로우에 문제가 있던가? 새롭게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나?


 지금껏 혼자서 기획서를 쓰고 혼자서 고심하던 저는 그제야 팀원들과 면담을 시작했습니다. 


 "새로 도입한 프로그램은 써보시니 어떠신가요?"


 그리고 거의 모든 팀원들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같았습니다.


 저는 기존 방식이 더 편해서 그 프로그램을 안 쓰고 있어요.


 황당한 마음에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다들 알았다는 듯 이야기를 하고, 아무도 쓰지 않았나요?


써보고 불편했다면 불편해서 쓰지 못하겠다는 사실은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은건가요?


그러자 다양하고도 적나라한 답변들이 돌아왔습니다.


 "저희도 경력이 있는 전문가인데, 각자가 제일 빠르게 할 수 있는 팁이 있고 방식이 있잖아요. 그걸 바꾸려고 들면 오히려 그게 더 느려지니까요."


"해보셨다는 실험 결과는 그냥 하경님 손이 빨랐던 것 뿐 아닌가요? 그 결과를 기준으로 저희에게 강요하시면 저희도 힘들어요."


"기존에 하던 작업 방식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렇게 어렵게 작업 방법을 바꿔서 작업 시간을 줄이면 무슨 이득이 있죠? 그냥 작업 기한만 더 짧아지는 건데 누가 하고 싶겠어요?"

 

팀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3가지 키워드가 머릿속에 정리되었습니다.


관성, 동기, 권위


 관성을 극복해야하는 테스크를 주지만 관성 극복의 노고를 굳이 감당할만한 보상도 없고, 성공하면 오히려 '작업 기한 줄이기'라는 페널티가 주어지는데, 그것을 제안하는 사람의 권위는 없는 것.


 다들 다른 이유를 대지만 이것이 공통적인 문제인 듯 했습니다.


 앞으로 무엇이든 개선하기 위해서는 관성을 극복할 수 있어야했고, 그것을 위한 동기가 있어야 했고, 제가 팀원들에게 하는 제안이 '제'가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어느 정도는 힘이 있어야 했습니다. 


 팀장 혼자 열심히 분석하고, 혼자의 실력을 쥐어짜며 최선을 다해도, 팀원들이 따라와 줄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매니징 첫걸음을, 경험으로 깨우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내 상사의 도움이 꼭 필요한 구간


팀원들과 친목을 쌓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관계에 기대어 부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팀원들에게 제 권한으로 어떠한 메리트를 보장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제안들은 결국 여러분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라는 확신을 주는 것,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

하나하나의 제안을 팀원들에게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만큼 탄탄하게 하는 것,

그리고 개개인의 동기와 목표를 파악해서 그것을 회사의 목표와 방향을 같이할 수 있게 연결점을 만들어주는 것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저에 대한 신뢰를 쌓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또 팀원들이 어느 정도는 믿고 움직여주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고민을 저의 직속 상사가 되신 그룹장님께 말씀드렸고, 상황을 들으신 그룹장님은 제게 일정기간 당신의 권위를 통해 제가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서포트를 해주셨습니다.


 그룹장님은 팀장으로서 제가 팀원들의 보상체계 안에서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게 될 역할들을 말씀해주셨고, 저의 권한 안에는 없지만, 그룹장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행동해주셨습니다.


 팀원들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제가 주관하는 회의시간을 존중해주시면서 회의 후반부에 직접 참석해주셔서, 앞에서 내려진 결론을 듣고 제가 진행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직접 설명해주셨습니다.


 본부 전체 싱크업 자리에서 제가 팀장이 된 사유에 대해 모두에게 설명해주시거나, 그룹 타운홀에서 제가 직접 저의 아이디어를 그룹 전체에 설명할 수 있도록 발표를 여러차례 하게 해주시는 등, 저라는 사람 자체가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여러 차례 기회를 제공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바쁘신 일정 중에도 1차 면접이나 입사제안 커피챗에 한동안 동행해주셨고, 필요한 경우 팀원들에게 제안할 일이 있으면 제안자가 그룹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어느 정도 매니징 경력이 있어서, 스스로가 훌륭한 매니징을 하기 위해 지니고 들어가야할 권한을 기업과 협상하고 들어갈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 매니징할 때 어떤 권한들을 필요로 하는 지 자체를 몰라서 자신의 권한을 합의하고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이미 조직 전체적으로 그 위치를 인정받는 상사가 초보 매니저에게 그 권위를 나누어주며 힘을 주는 것이, 초보 매니저가 고전하고 헤메는 기간을 크게 줄여주고 새로운 리더십으로 인한 혼란을 오래 끌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 스스로도 팀원들의 신뢰도 얻어야 해.


제가 제 상사 분의 도움을 받는 기간동안 저는 팀원들에게 '우리 팀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가장 가까이 있는 인사 평가를 통해 승진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제게는 연봉 협상권도 인사권도 없었지만, 마치 입시를 돕는 컨설턴트처럼 팀원들 모두가 인사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게, 평가 3개월 전부터 미리 각 사람의 서류를 만들고 회사에 기여하는 모든 일들을 작성하게 했습니다.


 팀원들 개개인의 동기와 업무적인 목표,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목표, 고민 등을 들으며, 지금 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팀원 개개인의 목표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자 노력했고, 각자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가야할 방향에 대해 조언하였습니다. 

 원하는 보상을 얻기에 가장 적합한 방향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팀원들 각자가 각자 다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내용을 보충하기도 하기도 했습니다.

 중간중간 리뷰하며 특히 두각을 보이는 성장 방향을 잡아 각자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도록 가이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프로그램을 쓰지 않던 분들이 다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업무 시스템을 통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점은 바로바로 전달해주셨고, 저는 바로바로 해결법을 찾아 적용하려 했습니다.


 4개월이 지났을 때 저희 팀은 기존과 같은 양의 업무를, 기존대비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완성하게 되었고, 그룹에서는 그 성과를 모든 본부에 발표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면서 팀원들의 사기를 높여주셨습니다.


 팀의 높은 성과와 개개인의 준비된 성장으로, 저희 팀은 실제로 팀 단위의 조직 중에 반년만에 가장 많은 인원이 승진하게 되었고, 약속을 지킨 이후로 훨씬 단단한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팀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이렇게 온 조직의 도움을 받으며, 어느새 저는 '매니저인 것이 이상한 사람'에서 '매니저'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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