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슬기로운 환자 생활
https://www.youtube.com/watch?v=beamS4GZ5T8
스텔라장, Le festin, 영화 '라따뚜이' OST
불어 혹은 프랑스 하면 난 현선이가 생각난다. 졸업하고 무작정 유럽 여행 갔을 때 파리에서만큼은 완전한 자유 일정이었다. 고등학교 동창 현선이가 거기 있었으니까.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기다릴 현선이 때문에 마음이 급해 루브르 박물관 구경은 제쳐두고 출구를 찾던 기억, 현선이가 살던 몽마르뜨 언덕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녔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몽마르뜨 언덕의 (유명하다는) 성당의 계단에서 빠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나누던 이야기, 현선이가 세 들어 살던 중세풍 건물 (현선이는 몽마르뜨 언덕 근처가 우리나라 산동네처럼 집값이 저렴해 구했다는데, 여행자인 내 눈엔 영화에서나 보던 고풍스러운 유럽식 외관의 살고 싶은 집이었다)의 어두웠던 나선형 계단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넘치던 화이트톤 4층 현선이 집의 정경들이 어제 일처럼 남아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보는데도 우리가 함께 했던 열일곱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마저 느끼게 나를 배려해준 현선이. 그때는 몰랐었다. 왜 현선이가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접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6개월 만에 방향을 바꾸어 프랑스로 왔는지를. 다만 현재 파리 몇? 대학 (구 소르본느 대학)에서 어학당에 다니고 있으며, 불어를 어느 정도 익힌 후엔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어 아예 프랑스에 살고자 한다는 현선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당시 나의 여행도 실패한 연애와 무관하지 않았었기에, 현선이에게 왜 아는 사람도
친척도 없는 낯선 나라에서 전공까지 바꾸며 살려 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던 것 같다.
귀국 후에야 대학 시절 현선이의 대단한 연애사를 건너 전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빠리에 다녀왔던 바로 그 해에 현선이가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아나운서가 되겠다며 과를 포기하고 들어갔던 연대에서 만났던 그 대단한 선배가 아닌, 프랑스 사람과. 프랑스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프랑스에서 살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가 스물일곱이 되던 다음 해에, 배려심 있는 서양 시부모님과 남편에 대한 현선이의 글을 읽은 것이 현선이와 나의 마지막 연락이 되었다. 그 후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새로운 SNS가 붐을 탈 때마다 한 번씩 찾아보려고도 해봤지만, 현선이만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보고 싶은데 못 보고 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20년 전 몽마르뜨 아지트에서, 내가 찍은 환하게 웃고 있는 그날의 현선이 사진으로 그 아쉬움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