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인 백수 생활

PART 2 슬기로운 환자 생활

by 작가정신

유치원에 들어간 이래 쉬지 않고 매일 등교나 출근을 했었다.


1년 반.


누군가에겐 짧다면 짧은 기간일 수 있겠지만 난 처음이다. 이렇게 길게 쉬어 보는 건.


작년에 내가 많이 존경하는 스님 (처음 뵈었을 때부터 산타클로스 닮으신 천진한 모습이 너무 좋았다)께서 인생 80세로 치면 난 절반쯤 산 것일 뿐이라고 날 위로해 주셨다.


그래, 한 번 쉴 때도 되었지. 학교로 옮긴 이유 중엔 연구년으로 포장된 안식년을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렇게만 보면 좋은 일인데, 그 사유가 질병 휴직이라니.


재작년 건강검진에서 폐암 진단받고 60세, 좀 더 욕심부려 65세 정년 마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드렸다.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종양이, 하필 가장 두려워한 뇌에서 발견되었을 때, 여러 개라는 말이 덧붙여진 순간 몽롱하게 휠체어에 앉아 흐릿한 시야로 들어온 의료진 얼굴에서 직감했다. 사실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 이미 알 수 있었다.


'인생이 이렇게까지 허망한가. 나 올해는 살 수 있을까?'


환자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 당신에게 생긴 겁니다."하는데, 그 환자가 나일 땐 "이런 일이 어떻게 내게 일어나나요!"가 되고 만다. 나라고 별 수 있나. 그래서 겪어보지 않은 의사들, 3분마다 암 환자 한 명씩 봐야 하는 대학 병원의 의사들이, 특히 젊은 의사들이 직업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을 이해한다. 나도 겪기 전에는 그랬으니까.


겪지 않고도 타인의 고통을, 마음을 헤아리는 의사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나이까지 젊으면.


3월에 '몇 개월을 더 살 수 있을까' 삶을 포기했던 나는,'올 해까진 사는 건가'를 거쳐


'그래도 50까지는'을 지나 다시 인간의 수명이라는 60세까지 살고 싶어졌다. 만나야 할 사람 만나고 엉망인 내 인생의 마지막 마무리는 잘 하고 싶어졌다.


불교에선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자신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내 운명이나 다른 누굴 원망할 마음은 없다. 그 부분은 뇌전이 소식에 죽음을 빨리 받아들인 때처럼, 내가 생각해도 덤덤하게 넘기는 것 같다. 대신 더 살고 싶은 건,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면 다음 생도 이번 생의 도돌이표를 타게 될까 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좋은 마무리를 짓고 싶어서다.


이제 금고아를 낀 손오공 신세가 돼버린 내 소원은, 하루하루 이 합법적인 백수 생활을 슬기롭게 살아내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i56kyWmMw&feature=youtu.be

stella jang, i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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