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격리 중

PART 2 슬기로운 환자 생활

by 작가정신

아침에 엄마 약 드리는 걸 놓쳤다. 요즘 나아지신 것 같고,'고맙다', '미안해'같은 말씀을 하실 땐 병나시기 전에도 자주 볼 수 없던 모습을 보이셔서 짠한 마음이 자주 들어 오늘 아침 약은 한 번 건너뛰기로 했다. 그러나... 그러지 말 것을! 오후에 비가 그치자 엄마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신다기에 마스크를 코까지 올려 쓰시라 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분노 폭발 모드가 되셨다.


약을 일찍 드리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실 때쯤 주무신 적이 몇 번 있어 선생님도 나도 난감했었다. 그래서 살짝 늦게 드리기 시작하다 급기야 오늘 깜빡 잊은 것인데, 그랬다고 이렇게 바로 돌변하시다니. 매번 겪고 있고 결국 환자와 이야기해봐야 분노의 도돌이표 반복이지만, 사실 나도 환자가 아닌가.
사람들은 내가 요양 생활 중이라 한가한 줄 아는데, 현실은 잡념을 일으킬 시간도 없다. 설거지하고 좀 쉬고 있으면 바로 다음 끼 뭐 할지 준비해야 한다. 도와주시는 분이 있어도 요즘처럼 입맛이 없을 때 환자 둘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같은 반찬으로 오래 버틸 수가 없다. 그나마 맛있게 먹어야 약 부작용인 설사도 줄고. 때문에 요리도 해야 하는데, 이건 내 부족함인데 요리는 흉내는 내는데 느리다! 어제도 내 오후를 바쳐 깻잎과 조기조림을 완성했다. 심지어 나는 라면보다 쉽다는 수제비도 3시간 걸린다.
그래서 요즘 나는 다른 일 할 짬도 없고 몸이 피곤해서도 못한다. 대신에 좋은 점도 있다. 밤에 엄마가 거실에서 TV를 크게 틀어 놓으셔도 잘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수술 직후, 올해 입원 후 두 달동안 불면의 밤을 보낸 환자인 나에겐 큰 장점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말도 안 되는 분노를 피해 (이 병은 주보호자를 괴롭힌다) 안방에 (다른 방들은 창문으로 베란다와 접근이 가능한 집 구조다;;) 매번 스스로를 감금시키다니... 그나마 요즘은 간헐적이긴 하지만.
수도 없이 들어왔다. 친척들부터 당장 엄마와의 분리를 위해 엄마를 입원시키라고. 그러나 주치의 선생님과 당사자인 내 생각은 달랐다. 나의 병으로 인한 충격으로 병세가 급진전되셨고 지금 조금씩 나아지고 계신다. 그리고 낯선 환경에선 엄마가 오히려 더 충격을 받으실 수 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오신 엄마가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계신다. 시골의 숙모가 엄마의 병 소식을 듣고 밤에 전화하셔서 지금 채널을 돌려 '미스터 트롯'을 보여 드리라 하셨지만, 엄마의 관성은 뉴스를 벗어나지 못하셨다. 내가 TV라는 것을 인지한 이래로 엄마와 함께 있는 거실에선 만화를 본 적이 없다. 외동이라 날 강하게 키우려 하셨다는 엄마는 사촌 동생 재원이가 있는 자리에서도 늘 거침없이 말씀하셨다.
"세상 돌아가는 걸 알려면 뉴스를 봐야 해."
내가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
지금 조용하다 해서 바로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오늘 약을 스킵한 엄마에겐 좀 긴 소강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띵동"
벨 소리와 동시에 이 억울한 유배? 의 심정을 적어 내려가던 폰에 택배 문자가 왔다.
이 시국에 웬 여권 갱신인가 툴툴거리며 신청한 증명사진이 나를 40분의 자가 격리에서 자연스럽게 꺼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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