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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정신 Mar 03. 2022

당황스러운 환자 생활

소동

 어제는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고 PET 검사를 했다. PET 검사 결과 뇌 이외의 전이 부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다만 약을 바꿔야 하는데 조직 검사할 부위가 없다는 아이러니. 혈액종양내과 담당 교수님은 뇌는 조직검사가 불가하니 내 경우, 다른 곳에서 유전자 변이를 찾아야 하는데, 전이된 곳이 없어 난감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 3년 전 폐암으로 좌측 폐 반을 잘라낼 때 흉막에 남아있는 부위(흉부외과에서는 흔적만 남은 것이라 하셨고 3년째 그대로다)가 검사 가능할지 알아보기 위해 흉부 CT를 찍기로 했다.

그리고 만일 흉막에서 암세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  흉강경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폐암 수술할 때 전신마취를 하고  흉강경 수술을 경험해 봤다. 결국 폐암 수술과 같은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한 마디로 조직검사도 간단치 않다는 건데, 그렇게라도 검사를 해서 원하는 유전자 변이가 있어야 뇌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제3세대 표적치료제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또 유전자 변이가 있어야 매달 660만 원의 비급여 약제비를 내지 않는 급여 판정도 받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타그리소라는 이 약 (물론렉라자라고 유한양행에서 타그리소를 능가하겠다며 나온 약이 있으나 비용은 비슷해 환자입장에서는 메리트가 없다)이 BBB(뇌혈관 장벽)라는 견고한 뇌 보호막을 뚫고 가장 좋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나도 여러 번 들었었다.

 암환자의 비급여 표적치료제 이야기를 하니 작년 말에 보건복지부에서 이런 암환자 치료제를 포괄수가제를 변동시켜 급여로 매달 몇 십만 원선으로 치료받던 환자들이 갑자기 몇 백만 원을 내는 정책을 추진했었다. 환자들은 정부에 항의를 하였고, 다행히(?) 기존 치료받던 암환자들의 약값은 원위치가 되었다. 이런 신속한 변화는 이례적인데 아무래도 대선의 영향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정책은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 새로 진입하는 암환자들에게는 비급여 적용이 된다고 한다!! 이제 4기 암환자들은  살기 위해 매달 수백만 원의 약값을 내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한 여학생의 국민청원이 떠오른다. 그때는 나도 막 수술을 받았던 터라 언론에 나온 어머니가 폐암이라는데  끌려  동의를 했다. 치과의사였음에도 당시의 나는 암 치료제 비용으로 집을 팔고, 이 학생처럼 1년 사이  가족의 치료비로 수 천만 원을 쓰고 있으니 정부에서 이 치료제들을 제발 급여화해달라는 이야기들은  스스로 체감할 단계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청원은 언론의 소개로 화제는 되었으나 인원 미달로 상정되지도 못한 것으로 들었다.

 그런 거지. 치료에만 전념해도 모자랄 판인 폐암환자들이 매년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해도 역시 부족한 인원수, 그것도 생사의 기로에 서서 더 떨어질지도 모르는 그들의 표는 탈모인 표와는 애초 비교 불능인 건가, 아님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스켑틱 한 건가!


 내가 생각해도 입원해서 각종 수술과 검사를 받고 있는 환자가 오늘 말이 쫌 많은 것 같긴 하다.(이래서 주변에서 환자 취급 못 받았나) 사실  오늘 나를 이렇게까지 급발진시킨 소동이 두 건 있었다. 어제는 수술과 PET 검사로 여력이 없어 오늘 새벽에 핸드폰을 보니 150여 개의 카톡과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중에는 비록 내가 입원했더라도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도 있어 도저히 환자 모드로만 지낼 수 없었다. 다음 주에  대학 새내기이자  내 지도학생이 될 학생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는데 격리기간 중 어쩔 줄 몰라 OT에서() 받은 지도교수 번호로 보낸 카톡이 그랬다. 그래도 이 건은 나에게도 보람과 활력을 주었다.

 그런데 저녁에는 나를 식겁하게 한 일이 있었다. 애초 예상보다 입원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 지갑에서 카드 한 장만 꺼내 지하 편의점으로 마스크를 사러 다녀왔다. 돌아와 카드를 집어넣으려고 금고에 넣어둔 지갑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내가 종종 깜빡깜빡하는 편이라, 혹시나 침대 밑까지 다 들춰보아도 지갑이 나타나지 않자. 잃어버린 신분증과 카드에도 신경이 쓰였지만  '내가 뇌에 평생 한 번 받을 수 있다는 전뇌 방사선과 두 번의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아 후유증으로  이런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동안 살겠다고 시작한 기도 덕분에  예전처럼 완벽주의 트리플 A형의 머릿속 공황사태는 가까스로 피했다. 결국은 지갑도 금고 위아래의 'ㄷ' 자 모양의 사각지대에서 찾았고. 그러나  씁쓸한 발견이었다. 환자 생활 몇 년 만에 뜻밖의 포인트에서 겁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은.



 PS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이런 일들에 오만 감정이 일어나는 거려니, 이 좁은 병동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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