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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gabond Feb 16. 2024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우리집이 2층인데, 아마도 우리 바로 아랫집, 윗집은 나의 고함소리에 치를 떨 것이다.

우리 쌍둥이들 사이가 너무 좋은만큼, 엄마인 나의 인상은 갈수록 무지막지해지고 목소리는 천장을 뚫고 하늘을 찌른다.


이제 초딩 2학년, 좀 컸다고 집 안에서 씨름이다, 칼싸움이다, 서로 동영상찍고 춤추로 난리 부르스

쿵쾅쿵쾅 깔깔깔깔 웃고 떠들고 소리지르고 난리법석

그러다 티격태격 싸우고 고함에 서로 눈을 희번득거리다가, 그러다가도 뒤끝없이 또 금방 풀리고 깔깔깔깔


평상시 정신없음과 별반 차이없는 익숙함에도

요즘 한창 어둠의 터널 아래 헤매이는 나의 정신 상태는 너무도 쉽게 분출되는 화를 통제하지 못한다.

이때다 싶게, 나는 고래고래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뿜는다, 시꺼먼 불길이 치솟는 한마리의 용처럼. 내가 더 날뛴다.


제발!!!!

제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만해!!!!!!!

그만 뛰어!!! 그만해, 그만!!!!!!!

조용히해!!!!

제발, 제발, 제발!!!!!



내가 이렇게 소리 지른다고 아이들이 급 조용해지진 않지만,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나마 낮은 목소리로 재잘거리다 다시금 모든 상황은 큰 반적없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상황 속, 어느 순간

무대 속  빨간 조명 스폿라이트는 내게 비춰지며, 나의 모습이 보인다.

꽥꽥 소리지르며, 스트레스 받고, 더 이상 참을 수 없겠다며 한숨을 푹푹

사랑의 감정이 한순간, 미움으로 돌변하고 짜증을 내뿜는 한마리의 화난 코뿔소



모든 것은 언제나 변함없이, 오늘이나 어제나 그제나 내일이나 항상 같은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내포하며 흘러가는데

나의 감정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달리 보이는 내 눈 앞 현실

좁은 시야의 삶을 살고 있음을 감지한다.

정말 한 끗 차이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미련이겠지만,

지금껏 마흔 초반까지 나는, 얼마나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는가.

부모, 사회, 세상의 제약과 압박에서 벗어나 내가 진정 하고 싶은 하며 살아본 적이 있는가.


취업 잘 되는 전공, 돈 되는 전공을 선택해 공부하고, 일을 하고

끊임없는 들끓는 목소리에 힘입어 나도, 나의 삶을 살겠다 큰소리치며 퇴사를 하고, 

그랬음에도 다시금 돈을 먼저 생각한 도돌이표.


퇴사 하기 전에는 퇴사 고민으로 잠 못 이루고

퇴사 후에는 무엇인가로 어서 나의 갑옷을 바꿔차야 한다는 조급함

가족,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 안심을 주고 싶었던 건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얼릉 돈을 벌어서 

다시 우뚝 서서 세상에 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필요했던 건가

무엇 하나 손에서 놔본적 없이, 무엇인지도 모를 무언가를 향해 돌진하다가 다시 번아웃이 온 것 같다.



나는 항상 모든 과정 아래 나의 진심을 직면하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그 진심이 때론 교묘하게 위선적이기도 모순적이기도 했고

의도치않게 실질적인 행동과 일치하지 않았고, 실천적이지도 않았으며

어리석음과 게으름 안에 여전히 있었음을 발견한다.



이럴꺼면 회사를 다니지 왜 이걸 하고 있는가, 다시 수없이 반복되는 물음이 시작된다.

.

.


잊고 있던 걸 또 다시 깨닫고, 또 잊고 또 깨닫고, 

잊고 깨닫고의 행위를 삶 아래 무한반복한다.

뭐든지 잘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 투자와 열정이 필요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능력은 한계가 있다. 

시간이 아깝게 여겨진다는 것. 

이것이 내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내면의 whisper.

또 다시 돌아와서 끊임없이 속삭인다.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는게 당연한 세상 속에서 배우고 컸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잘못된 것이며,

하고 싶은 것은 취미로 하는거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이 이기적인 삶,현실적이지 못한 삶으로 치부되는 세상

남편 있는 나도 힘든데, 외벌이 가장들은 오죽하랴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에 왜 이리 큰 용기가 필요로 하는가.

세상의 속박 아래 내가 쳐놓은 새장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

사회적인 것을 기준으로 모든 결정을 내렸던 지금까지의 삶이 너무 익숙해

내 마음 속 목소리를 따라 길을 걷기가 너무도 두렵다.

흑백 논리가 아닌데, 흑백 논리로, 이분법의 기준으로 마음의 목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으로 치부,

우리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 잊게 되며

그저 어둠속에서 헤매이다 그나마 물질적인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세상 사람들의 말, 세상의 기준은 분명하고 명확하고 길이 뚜렷히 보이는 반면,

내 마음의 목소리엔, 나 외에, 아무도 내 편이 없는 듯 하다.


퇴사한지 2년 넘었다.

진정 내 안에 목소리를 따라

아무 제약 조건 없이, 결과 생각 없이

하고싶은 일에 한번 몰두해보기 위해 용기를 낸다.

결과를 기대하기 보단, 과정에 의미를 두며. 


그렇게 나의 목소리를 다시금 진지하게 상대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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