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6월 초여름 날씨다. 인간의 도움 하나 없이 자연의 힘 하나만으로 온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여주는 나무들이 참 대단하다 느껴지며 고마운 요즘이다. 나무가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있을까? 귀로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여러 다양한 통로와 방식을 통해 나무는 인간과 소통한다.
차디찬 바람과 모진 추위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무성한 푸름을 선사하는 우리 집 앞 나무는, 아마도 감나무 같은데, 요즘들어 내게 종종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뚝심 있게 나아가라고. 더 이상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갖지 말라고. 걱정할 게 없는데 왜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냐고. 앞으로가 더 희망찬데 이렇게 어리석은 바보마냥 뒤를 자꾸 쳐다 보다가는 돌부처가 되버린다며 바람에 휘날리는 잎들이 내게 속삭여 경고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항상 그 자리 그대로 굳건히 버티고 서있는 나무는 속 깊은 친구 같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따뜻한 햇살이든 모진 추위이든 그대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당하며 눈부시게 살아있는 나무에게 요즘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주말 내 이전에 여기 썼던 글들을 다 읽어보았는데, 나는 내 마음을 알아서 그런지 좀 읽기가 힘들었다. 퇴사를 하던 몇 년 전에는 그리 파이팅 넘치게 희망차 있다가, 시간이 갈수록 힘이 쭉 빠져, 요즘에는 동물원에 널브러져 있는 한낮의 동물들 마냥 무기력하게 있었다. 그러면서도 널브러져 있는 그 모양새를 스스로 인정하기는 싫었는지, 간간히 글을 쓰며 게으르지는 않은 척 위장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렇게 쭉 가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 같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현 시점에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조급함과 게으름이다. 이 두가지의 특성은 얼핏 보면 상반되어 보이지만, 상당히 서로 얽혀 있는 심리행동 양식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게으르니 조급한 것. 또한 조급하니 우왕좌왕 실천을 못하게 되면서 다시 게을러지는 것.
생각이 생각으로만 끝나면 의미가 없는데 이것이 지금까지의 내 삶의 패턴이였다. 생각만 하는 게으름뱅이. 솔직히 생각이 행동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니 더욱 더 생각만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생각은 무뎌 지게 마련이고,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생각을 잃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어지면서 다시 핑계가 생기고. 무기력해지고 게을러지게 되고,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들면서 그나마 돈이라도 벌었던 과거로의 회귀 본능이 솟구친다. 현재의 내 삶 안에서는, 이렇게, 미래의 희망을 자꾸 과거가 무마시키려고 한다. 대립과 전쟁이 일어났다 말았다는 수없이 반복한다.
즉. ‘하고자 하는 것을 열심히 실천하여 행위하지 않으면, 과거, 즉 가장 손쉽고 익숙한 삶의 패턴인 과거로 회귀 할 수 밖에 없다’ 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 15년 열심히 일하면서 돈도 조금 모았고 했으니, 이제는 좀 편하게 살지? 남편은 계속 일하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그냥 편하게 살아. 뭘 그리 하려고 그러냐. 이렇게 말하는 가족, 친구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의 ‘편하게’란 말의 의미를 ‘조급함 없이’ 로 해석해서 받아들인다. 나를 구성하는 여러 면들 중 너무 하나에 매몰되어 그 밖의 다른 소중한 것들을 농치지 않도록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사실,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 그 자체로만 봤을 때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엮여진 관계 아래 나는 이미 나의 옷을 입었다. 이 자체로 너무 감사하지만, 하나의 독립된 인간, 나란 사람이란 존재 자체로써, 내게 주어진 재능, 의미를 두며 할 수 있는 일은 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삶에 대한 소망.
눈을 감고 꿈을 이야기 하면, 꿈꾸는 미래에 대해 상상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굳이 회사원의 삶을 고집해서 살 필요가 없다. 난, 단순히 일을 하기 싫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힘들어서 퇴사한 것이 아닌, 분명한 사유를 가지고 오랜 시간 고민 끝에 퇴사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기 보단, 내게 좀 더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퇴사한 것이므로, 그러므로 퇴 사유가 너무나 분명하고 명확하다. 뒤돌아보지 말자. 까먹지 말자.
해오던 일숙한 일이 아닌 만큼, 한달에 꼬박꼬박 월급을 주고, 1년에 한 번씩 업무평가를 하고 보너스가 돌아오는 그런 가시적인 결과와 성과들이 바로바로 나타나주지 않음을 직시하고, 삶의 기준점을 눈에 보이는 것에 한계 짓지 말자.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다고 서두르고 조급해하지 말고, 넉넉한 가슴으로 마음과 귀를 열고 찬찬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기에 실천해야 한다.
첫 책 출간을 위해 열심히 작업하고, 또 현재는 휴학 중인 대학원 공부를 가을부터 열심히 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미래의 꿈이다. 과거이냐, 미래이냐 어디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자꾸 과거로의 회상은,
미래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의심을 품는 것이므로, 꿈꾸는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
아무리 나무에 물을 많이 줘도, 하늘에서부터 뿜어져 내려오는 빛이 없다면 식물들, 나무들은 죽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가능성이 있어도 과거를 자꾸 뒤돌아보며 미련하게 희망고문 한다면,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돌부처처럼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