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불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길을 걷다가 작은 마른 나뭇가지나 잘 마른 솔방울만 봐도 모아서 작은 모닥불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요.
어릴 적 할머니와 살던 집 마당 가운데엔 커다란 아궁이와 가마솥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릴 때 마음껏 못 먹은 게 한이 된다며 뭐든 음식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된장이며 고추장을 담을 메주콩도 큰 가마솥 한가득 김이 펄펄, 기나긴 겨울밤 동짓날 팥죽도 가마솥 가득 쑤어 동네 어른들을 대접했지요.
할머니는 어린 제 손을 끌고 뒷산에 ‘깔비’를 모으러 자주 다니셨습니다. 할머니는 누렇게 말라 떨어진 소나무 잎을 ‘깔비’라고 부르셨지요. 솔숲에 두껍게 깔린 ‘깔비’ 카펫을 폭폭 밟을 때마다 폭신하니 마른 솔내가 났습니다.
할머니는 쇠스랑으로 솔숲 아래를 긁어 금방 커다란 자루 한가득 깔비를 모았어요. 바짝 마른 솔잎은 아궁이 안에서도 금방 타올랐죠.
할머니는 어린 제게도 가끔 불 피우기를 시키셨어요. 허락된 불장난이 제겐 얼마나 재미가 있었을까요? 비 오는 날 불 피우기도 자청했을 정도니까요.
맑은 날 불 피우기는 식은 죽 먹기였지만, 비가 오거나 해서 습기가 많은 날은 쉽지가 않았어요. 작은 불꽃을 만들 성냥 머리부터 힘 없이 툭툭 부러져 버렸으니까요. 어렵게 성냥에 불이 붙어도, 깔비에 붙은 불은 야속하게 쉽게도 꺼졌어요. 불이 붙기 전에 매캐한 연기 덕에 눈에 불이 먼저 났습니다. 연신 연기에 매운 눈을 비비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도 아궁이 앞을 떠나지 않았어요. 쉽게 꺼지는 깔비 마중불이 활활 타오를 때를 기다렸다, 얼른 골라낸 잘 마른 잔가지를 넣어줘야 했거든요.
제게는 저처럼 불멍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거실에는 벽난로, 주방에는 나무를 떼는 주물 화덕까지 둔 친구가 있어요. ‘깔비’가 없을 땐 바짝 마른 빵이나 심지어 제때 먹지 못해 말라빠진 빠네또네까지 화덕에 넣고 태워버리니 저보다 한 술 더 뜨지요. “어머나, 쟈클린! 빵을 태워?” “응, 뭐가 어때서?” 콧노래까지 부르며 마른 빵을 태워 마중불을 만드는 새하얀 머리칼의 스위스 할머니를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신이 나 보이던지요.
지금도, 저도 그래요. 벽난로 청소는 귀찮지만 불을 지필 때는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작은 종이 영수증, 와인 박스, 마른 꽃잎이나 잔나뭇가지도 다 따로 모아 두지요. 마중불을 지필 ‘깔비’가 필요하니까요.
이곳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주는 어느새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아침 저녁으로 영하까지 기온이 나려가니 으슬으슬 초겨울 같기만 합니다.
소중히 모아둔 ‘깔비’를 꺼낼 시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