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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pr 02. 2023

이탈리아 쐐기풀, 맛있다길래 만졌다가...

쐐기풀의 유혹

'쐐기풀'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그 이름처럼, 첫 만남의 인상은 제 기억 속에 커다란 쐐기가 박힐 만큼 고약한 풀이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맛이 너무나 훌륭해서, 산이나 언덕길에서 하늘하늘 손짓하며 유혹하는 자태를 보면..... 당장 따오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이 풀에 반해 버렸지요.


쐐기풀. 이상하게도 '쐐기풀'이라고 석 자를 아무리 불러도 영~ 떠오르는 모양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풀이기 때문일 겝니다. 저도 이탈리아에 와서 등산을 다니고 나서야 그 모양을 눈여겨보았다가 기억하게 되었어요.


저는 요리를 이탈리아에 와서 배우게 된 지라, 특히 식재료 이름들은  이탈리아 어로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쐐기풀도 그런 케이스였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 강렬한 첫 만남은 산에서였습니다. 등산에 긴 바지 긴 팔 옷은 정석이라지만 더위가 다가올 때가 되면 그게 어디 쉽나요? 겁도 없이 반바지에 등산화, 긴 등산 양말을 쑥 올려 신고 신나게 등산을 다녔지요.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등산을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탈리아 친구 가브리가 등산지팡이로 한 식물을 지목하는 겁니다.


"이거 진짜 맛있어. 우리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봄만 되면 여린 잎을 따서 프리타타(Frittata)를 만들어주셨어. 그런데..."

"그래?"


사람 말은 역시 끝까지 들어보아야 하는데, '그런데'로 시작된 뒷말이 채 귀에 들어오기도 전에 제 손은 이미 그 정체 모를 풀로 향하고 있었지요. 저는 허브만 보면 향을 잘 맡기 위해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잎을 넣고 세게 비비는 버릇이 있어요. 로즈메리, 세이지, 타임, 바질, 월계수 잎도 예외는 아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악!" 만지자마자 두 손가락이 불에 붙은 듯해서 팔짝 뛰고야 말았죠. 독침에 찔린 듯 심각한 고통에 어쩔 줄 모르는 저를 보고 가브리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지요. "맨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 풀이름이 뭐야? 이 나쁜 풀 놈! 네 이름이나 알고 보자!"

"오르띠께 Ortiche야."

"오르띠께???"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응, 단수로는 오르띠까 Ortica, 복수로는 Ortiche."

"뭐야?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 나쁜 애들한테는 여성형을 붙이고 그래! 이 나쁜 지지배 풀 같으니라구!!! 내 너를 꼭 기억하리라!"


자세히 보니 생긴 건 마치 작고 날씬한 깻잎 비슷한 모양인데, 온 줄기며 잎 뒤까지 온통 눈에도 보이지 않을 작은 가시들로 뒤덮여 있는 겁니다. 더구나 작정하고 싸워보자고 높이 한껏 치켜올려 묶은 괴상하게 흥이 난 여자의 포니테일 머리카락인 양, 이상하게 생긴 꽃들이 너풀너풀 바람에 날리고 있었지요. 마치 그 고약한 성질머리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했어요.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풀이 높이 자란 곳을 지날때면, 꼭 맨살이 드러난 부분이 풀에 쓸려 간질간질 쓰라리기 마련이었죠.

“이 오르띠께 녀석들!!!”

이렇게 저는 등산 내내 오르띠께를 발견할 때마다 눈이 찢어지도록 흘겨보며 멀리멀리 피해 다녔습니다.

 

나중에 '오르띠께'가 한국말로는 '쐐기풀'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쐐기풀? 그 옛날 저주에 걸린 백조 왕자들의 저주를 풀려고 여동생이 옷을 짜 입혔다는 그 풀이 이 풀이라는 거지요? 저는 쐐기풀에 심하게 쏘이고 나서야 그 여동생의 정성이 대단했는지 알게 된 셈입니다. 세상에나!!! 손 끝에 피를 뚝뚝 흘리며 옷을 지었다던 막내 여동생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었던 거군요. 아니, 그 쐐기풀 옷을 입은 백조 왕자들은 또 얼마나 온몸이 간지럽고 따가웠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국에는 가시가 잔뜩 달린 풀 중에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이 있었네요. 아니,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가시풀로 밑을 씻으라 했을까요? 참 옛날 사람들 식 농담도 무시무시했군요.


생각해 보니 참 다행입니다. 이 쐐기풀 자생지가 한국이 아니라는 것이요. 그 불쌍한 며느리들, 쐐기풀로 밑을 씻게 되었더라면 어쩔 뻔했습니까?


쐐기풀을 바라보며 또 막영상 하나를 찍었습니다. 영상이라고는 해도 첫 영상과 마찬가지로 자막도 노, 초점도 흐릿, 영~ 풀떼기만 가득한 저세상 품질의 동영상이지만, 제 목소리로 에피소드들을 담아보았어요.

구경들 오시어요~ ^_^


채널명: 지윤지윤의 이탈리아 일기

<이탈리아 쐐기풀! 미지의 황금 작물?>

https://www.youtube.com/watch?v=o8-DuiVOq6M&t=4s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풀이 맨손으로 만지지만 않으면, 잘 요리해 내기만 하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답니다.

기회가 될 때 쐐기풀 요리법도 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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