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Antico Vinaio 알 안티꼬 비나이오
인지도, 신속도, 신선도, 가성비와 더불어 제겐 맛도 좋았던 피렌체 최고의 빠니노를 소개합니다.
“나만 이 길을 갈 수 있어. 너흰 안 돼.” Via dei Neri 비아 데이 네리……. 말하자면 ‘흑인들의 길’로 접어들자 혼혈이라 피부색이 밀크 초콜릿 정도인 디디에가 농담을 던집니다.
“뭐라는 거야? 넌 흑인이라기엔 너무 피부색이 밝다구!”
“오바마가 대선에 당선되었을 때 난 미국에 있었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흑인이 날 보며 웃으며 뭐랬게?
We won! 날 흑인으로 인정해 준 거지. 그러니 난 이 길을 걸을 자격이 있어!.” 한참 농담을 주고받으며 걷던 중, 한 가게 앞의 긴 줄을 발견했습니다.
“어? 여기 맛있나 보다. 호텔에서 멀지도 않으니 나중에 들르자.”
이리저리 볼 것 많은 피렌체. 해 지고 난 저녁이야 느긋하게 앉아서 와인 한 잔을 기울일 여유가 있지만, 금토일 반짝 여행인데 앉아서 점심 먹을 시간이 있나요? 더위도 지난 걷기 딱 좋은 성수기라 눈물을 머금고 배나 비싸게 지불한 호텔, 조식이라도 든든하게 먹자 했으니 점심시간이 훅 하고 지나서야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피렌체까지 와서 빠니노?” 했지만, 이미 점심 영업이 끝난 곳은 많고, 저녁 식사 시간까지 몇 시간 남지도 않았으니 친구 말처럼 간단히 허기만 가리는 게 낫겠습니다.
“어디 간단하게 먹을 곳이 있나 찾아보자.”
사람들이 붐비는 Piazza della Signoria 삐아짜 델라 시뇨리아를 조금만 벗어나자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빠니노를 베어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럼 우리도 진짜 빠니노? ‘miglior panino a Firenze (피렌체 최고의 빠니노)’ 를 검색창에 넣자 바로 뜨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어? 비아 데이 네리? 혹시 아까 거기 아닐까?” 그러게요, 구글 지도를 따라가니 농담을 하며 지나간 그 빠니노 가게가 맞습니다. 똑같은 이름의 규모가 작은 빠니노 가게가 네 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는데도, 그 줄이 어마어마합니다. 빠니노 가게 앞에 한 덩치 하는 보안 요원까지 있으니 말 다 했지요.
“줄이 길어 보여도 회전율이 좋아 보이는데? 뭘 고를지 생각하다 보면 차례가 금방 올 거야.” 역시 긍정적인 디디에가 줄을 보고 표정이 바뀐 제게 용기를 줍니다. 재빠른 다니엘라는 벌써 메뉴 사진을 찍어왔군요.
“난 피스타치오 좋아하니까, 피스타치오 듬뿍이랑 모르따델라!”
“난 그냥 클래식하게 모르따델라랑 부라따!”
“난 Inferno 인페르노!”
전 왜 매콤한 게 땡겼을까요? 얇게 자른 돼지 통구이 뽀르께따에 매운 살시챠 인두야가 들어간 이름도 무시무시한
Inferno 인페르노(지옥)!
정말 딱 메뉴를 정하고 나니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인지도나 신속도는 최고가 맞군요. 왜 빠른가 했더니 빠니노 만드는 데 손 빠른 젊은이들이 여섯이나 붙어 있습니다. 손님이 원하는 빠니노를 주문하면 한 명은 빵을 자르자마자 속 재료를 채우고, 다른 한 명은 슬라이서로 즉석에서 주문이 들어온 만큼만 재빨리 모르따델라며, 프로슈토며, 뽀르께따 등을 얇게 잘라 수북하게 올려 주더군요. 2인 1조로 세 군데서 주문을 한꺼번에 받아 즉석에서 자른 햄으로 빠니노를 만들어주니 신선도 최고, 인증입니다.
‘어? 나도 모르따델라에 부라따 시킬 걸 그랬나?’ 수북이 올린 얇게 자른 부드러운 모르따델라 햄 위에 부라따 하나를 통째로 올린 후 바로 반으로 찢어 빵으로 닫는데 보기만 해도 침이 고입니다.
커다란 빠니노를 들고 홀 끝의 계산대로 갑니다. 작은 여자 핸드백 크기의 빠니노가 비싸야 10유로, 12유로? 가성비도 끝판왕이군요.
겉바속촉 빵에 푸짐하게 가득 채워진 신선하고 질 좋은 속재료. 빵도 그냥 빵이 아니라 피렌체에서 schiacciata 스끼아챠따 라고 불리는 올리브 오일과 소금이 들어간 focaccia 포카챠, 맛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소금을 넣지 않는 피렌체 전통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는 간이 딱 맞는 겉은 파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얇은 포카챠 스키아챠따가 정말 반가웠습니다. 화장실을 가며 슬쩍 봤더니 제과 제빵계의 벤츠 Rational 레이셔널 오븐이 큰 사이즈로 두 개나 떡 하니 있더군요. 위층에서 스끼아챠따를 산처럼 쌓은 쟁반이 쉴 새 없이 내려오는 걸 보니 빵도 직접 만들어 쓰는 빠니노 가게의 성공 비결을 엿본 듯 했습니다.
그냥 아무 곳이나 가면 작은 젤라또 하나에 6유로를 내라는 피렌체 중심가. 우피치 미술관에서 <비너스의 탄생> 보느라 식사 시간도 놓쳤는데, 간단하고 재빠르지만 맛도 있는 한 끼가 생각날 때. Via dei Neri 비아 데리 네리에서 빠니노 하나 어떨까요?
All’Antico Vinaio 알 안티코 비나이오
Via dei Neri 65r, Firenze, Ita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