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피, 란자로떼, 몰타의 겨울
“저기요, 제 햇볕을 가리지 말아 줘요.”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가 작은 마을 에르끼에(Erchie), 햇살이 따갑던 어느 한겨울의 오후 즈음이었다. 한겨울에 햇살이 따갑다고?
그렇다. 1월이었던가 2월이었던가? 유독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던 날이었다. 관광객이 뜸한 한겨울 아말피의 작은 해변에는 너도나도 햇살을 즐기려는 인근 거주자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온몸으로 햇살을 받았다. 얼굴이 빨갛게 될 때까지 말이다. 온몸이 햇살을 받아 뜨거워지면 친구 세넴과 장난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준비 됐어?”
“응.”
“한 번에 바로 가기야!”
“하나, 둘, 셋, 꺅~!!!!”
우리는 두 마리의 까마귀라도 된 듯 꺅꺅거리며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닷물은 얼음처럼 차디찼다. 겨울 바다에 뛰어들 때는 머리는 적시지 않는 것이 우리의 불문율이었다. 바닷물에서 나올 땐 재빨리 몸을 닦아내야 했으니까. 그러니 겨울 바다에 뛰어들 땐 몸매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비키니다. 탈의실도 철수한 겨울 해변에서 초를 다투며 수영복을 갈아입기엔 원피스 수영복은 효율이 낮다.
재빨리 젖은 수영복을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햇살 아래 누우면 뜨거운 햇살과 바람의 조화가 여간 상쾌하지가 않다. 한국 목욕탕에서 묵은 때를 박박 밀고 나올 때의 상쾌함이랄까? 몸이 가볍고 개운해진다. 나중엔 나른하게 졸음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양쪽 해변의 정중앙 즈음에서 시작된 해바라기 무리는 햇살이 움직이는 대로 조금씩 움직였다. 햇살을 따라 더 이상 갈 수 없는 절벽 아래 한쪽 해변이 끝나는 지점까지.
하루종일 햇살 아래 해바라기를 해도 마지막 햇살까지 알뜰하게 모두 받고 나야 그날의 해바라기는 끝이 난다.
“저기요, 미안하지만, 내 햇살을 가리지 말아 줘요.”
그렇게 햇살이 좋은 날은 해바라기 잘하고 있는 사람의 햇살을 가리는 일만큼 무례한 일이 없다. 엉덩이를 깔고 앉은자리의 햇살이 ‘내 햇살’이다.
“어머! 죄송합니다.” 일체의 변명 따위는 없다. 다른 이에게 잠깐이나마 그늘을 만들었던 대역죄인은 즉각 사과를 하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햇살을 즐기는 거다.
겨울의 햇살은 이렇게 어느 무엇보다 값비싸다.
재작년 겨울, 토리노에서 직항, 단 몇 시간 만의 비행으로 도착한 스페인 령 란자로떼(Lanzarote). 훅 하고 불어오는 따스하고 가벼운 밤바다 바람은 얼마나 감격스러웠던가?
작년 겨울엔 그 귀한 햇살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겨울 휴가가 끝나고, 다시 레스토랑을 오픈했을 때, 까맣게 타서 이가 더 하얗게 보이는 클라우디오가 주문한 채소를 배달해 주며 안부 인사를 건넸다.
“어디 다녀왔어?”
“몰타. 따스한 줄 알았더니 추워서 아주 혼이 났어.”
따스하다길래 크게 고민하지 않고 훌쩍 떠났던 작년 겨울 몰타(Malta)의 햇살은 영혼까지 데우기엔 2% 부족한 느낌이었다.
클라우디오는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이걸 봐. 여길 갔어야지!”
클라우디오가 보여 준 사진 속에는 까맣게 탄 클리우디오와 친구들이 바닷물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래? 다음 겨울 휴가는 테네리페(Tenerife)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좀 더 일찍 알아봤어야 하는데 , 지구력 강한 미루기에 발목을 잡혔다. 어제까지 보이던 직항 비행 편은 다 어디로 갔나? 제주도보다 큰 섬이라는데, 숙소가 이것밖에 안 남았다고? 연말이 코앞이라 테네리페 행 비행기 표든 숙소든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추운 나라 사람들이 죄다 햇살을 찾아 테네리페로 가기라도 하는 걸까?
토리노 출발 비행 편은 어찌 된 일인지 이젠 직항 자체가 없다. 밀라노 출발 직항도 찾기가 쉽지 않은데, 밀라노 말펜사 출발 비행기를 타자니 그 기간에 공항 주차장에 자리가 없단다.
아! 역시 겨울 햇살은 어딜 가나 비싸구나!
표지 사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최남단 ‘마르자메미 똔나라 (Marzamemi Tonnara)’에서 햇살을 즐기던 오렌지색 고양이.
촬영 일자: 2019년 1월 20일.
사진: 이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