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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Oct 08. 2022

나의 머리카락 이야기

미용실에 앉아서


 아내와 미용실에 왔다. 아내의 머리를 염색하는 동안 문득 떠오른 내 머리카락과 미용실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을 글로 옮겨본다.


1. 나는 곱슬머리다. 그것도 꽤나 굵고 뻣뻣한 모발로 빽빽한. 초등학생 때까지는 몰랐다가 2차 성징이 시작될 때쯤 머리가 꼬이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들이 내 머리를 '철사'로 비유하며 했던 여러 가지 농담들.


 - 잘못 손 대면 다친다.

 - 녹 쓴 머리카락 잘 못 만지다 파상풍에 걸린다.

 - 너는 머리 자르려거든 미용실 말고 철물점으로 가라. 가위 이상의 공구를 사용해야 할 테니.


 그 외에도 볼펜을 뒤통수에 찔러 넣고 빠지지 않는다며 신기해하던, 참 순수하고 착한 녀석들. 반면에 속이 배배 꼬이고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는 그들의 언어와 행위에 상처받기 일쑤였고, 그렇게 미용실은 내게 '어쩌면 정말 내가 가면 안 되는 곳'이라 여겼는지 모르겠다.


2. 중학교 1학년 때쯤이었다. 커트를 하려고 집 근처에 있는 미용실을 찾았다. 그때쯤엔 어느 정도 남자가 미용실을 찾는 게 나름 자리를 잡았던 걸로 기억한다. 남자 미용사가 나를 자리에 앉히고는 원활한 작업을 위해 분무기로 머리에 물을 뿌리며 빗질을 시작했다. 한두 번 하더니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계속해서 물질을 해댔다. 얼마나 많은 물이 머리를 적시는지 그 자리에서 익사하는 줄. 그렇게 푹 젖은 나를 보며 껄껄 웃으며 그가 말했다.


 "이야, 니 머리숱 진짜 많네. 옆에서 라이터 키면 니 머리에 불 붙겄다. 안 그래도 곱슬이라 꼬실라져 있네. 신기하다이."


 미용실을 불 지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당연히 두 번 다시 그곳을 찾지 않았다.


3. 그 이후에도 여러 미용실을 전전하며 상처받고 소심해져만 갔고, 그렇게 이십 대 중반까지 머리를 기르지 않았다. 스포츠머리를 유지하며 미용실에서도 바리깡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걸로 충분하게 유지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이후에는 계속 그렇게 다니기가 힘들어졌고, 스타일을 내 보고자 지인의 소개로 찾은 미용실이 지금까지 15년 단골이 되고 있다.


 원장님이 고객을 대하는 마인드와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내 머리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해 줌은 물론, 오랜만에 찾아도 전에 나눴던 대화를 잊지 않고 있다가 다시 물어주는 센스와 노력까지. 내게 그저 불편하기만 한 미용실이란 공간이, 이곳을 만나 편안하게 힐링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아내도 나와 결혼하고 여기를 단골 삼았고, 역시 나와 같은 이유로 이 미용실을 애정하고 있다.


4. 어릴 때 머리카락 때문에 괴로워하던 내게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다.


 "얘야, 머리는 어른되고 나이  수록 빛을 발할 것이란다.  많은 숱은 분명 부러움의 대상이  것이고, 곱슬머리가 얼마나 편하게 머리를 만질  있는지, 너는 아직 어려서 모를 뿐이란다."


 그때는 다 소용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마흔이 넘은 지금,

어머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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