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락, 정당, 그리고 “왜 이 위험한 책을 읽는가”
권박사
이렇게 보면 현대 관점에서 독재 옹호로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홉스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을 끝내려면, 권력의 독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죠.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주권은 분할될 수 없으며, 동시에 두 개가 있을 수 없다.”
현대 정치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주장입니다.
전학사
대통령제에서는 주권이 두 기관으로 나뉘어 작동합니다.
하나는 대통령, 다른 하나는 의회죠.
그래서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는 사실상 두 권력이 충돌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 충돌이 심해지면 민주주의가 흔들릴 소지가 더 커진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권박사
대표적으로 후안 린츠(Juan Jose Linz) 같은 학자들이 대통령제가 가진 근본 문제로 ‘주권의 이분’, 즉 이중 권력 구조를 지적하죠.
이 위험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어져 왔고,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이 맞부딪히며 교착상태가 생깁니다.
그걸 ‘데드락(deadlock)’이라고 합니다.
전학사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야가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죠.
교착이 장기화되고 타협이 없으면, 극단적 방식으로 데드락이 풀리기도 합니다.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반대로 탄핵이 일어나기도 하죠.
권박사
실제로 남미 대통령제 국가들에서는 이런 데드락과 탄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많습니다.
전학사
쿠데타도 많이 있었죠?
권박사
그랬죠.
데드락이 일상화된 나라에서는 대통령은 대통령 권력을 강화하려고 헌법을 고치고, 의회는 의회 권력을 강화하려고 헌법을 고치는 일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전학사
대한민국에서도 계엄과 탄핵이 발생했죠.
권박사
탄핵 국면에서 이중 권력, 이중 주권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학사
의원내각제에서는 데드락이 구조적으로 덜합니다.
왜냐하면 교착이 심해지면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치르게 되니까요.
선거라는 절차로 갈등을 정리하는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반면 대통령제는 극단으로 치닫더라도 데드락을 자동으로 풀어주는 장치가 약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제가 민주주의 유지에 불리할 수 있다는 설을 주장한 학자들이 꽤 있습니다.
권박사
미국도 탄핵 위기가 있었죠.
클린턴 대통령 때 르윈스키 사건과 관련해서 위증 문제로 탄핵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대통령제에 데드락이 구조적으로 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전학사
그래서 홉스도 고민 끝에 한 명이 모든 권력을 가지는 군주정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권박사
그렇습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선거이죠
전학사
홉스 이후에는 삼권분립이 민주주의 시스템의 정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로크는 입법과 사법의 분립을 말했고, 몽테스키외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을 정리했죠.
권박사
그리고 홉스는 또 다른 방향에서 국가 해체 요인을 경계합니다.
정당, 종교 당파, 미신,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들.
그 모두가 주권을 흔들 수 있다고 보죠.
전학사
정당정치의 순기능을 무시하는 면도 있지만, 홉스가 출발점으로 삼는 건 항구적 평화입니다.
계약으로 자연권을 양도했으면, 그 계약을 깨는 요소는 위협이 되는 거죠.
권박사
그래서 23장에서 ‘공적 대행자’ 개념을 만들고 관료제와 공무원 조직을 통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코먼웰스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사적인 선악 판단, 잘못된 양심, 신비주의 확산 같은 것도 듭니다.
전학사
이제 마지막으로 홉스의 사회계약에 대한 비판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출발점 자체가 비판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상태에 있다고 해서 항상 서로를 죽이는 상태는 아니지 않습니까?
권박사
그런 상황은 많습니다.
정치 시스템을 만들 때는 최악을 가정해야 합니다.
영화 <본 Bourne 시리즈>에서 배경이 되는 미국 정보기관이 내세우는 말입니다.
'Hope for the best, plan for the worst'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을 대비하라'
홉스는 최악을 대비한 사상가였습니다.
전학사
둘째 비판은 더 강합니다.
리바이어던이 잘못했을 때, 인간은 그 리바이어던을 없앨 권리가 있는가.
홉스는 사실상 없다고 말합니다.
권박사
그걸 허용하면 다시 전쟁상태로 돌아간다고 보니까요.
그래서 비극적입니다.
전학사
그래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는 ‘혁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죠.
동양에서도 맹자의 역성혁명 같은 개념이 있고요.
권박사
홉스를 비판하는 건 쉽습니다.
중요한 건, 왜 그가 극단까지 자신의 사고를 밀어붙였는가입니다.
그 과정에서 얻는 통찰이 있습니다.
전학사
그래서 저는 『리바이어던』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이 시대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권력자만이었을까.
홉스와 같은 사상가들도 또 다른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권박사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합니다.
능력 차이는 있어도 그 차이가 결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약자들이 공모하면 강자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전학사
벌써 다음 다룰 책인 『사회계약론』이 기대됩니다.
약자들이 공모하여 강자를 쓰러뜨린 책 아닙니까.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책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