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먼웰스 : 국가는 ‘안전을 보장할 만큼 강한 힘’이다
전학사
이 과정을 거쳐 홉스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코먼웰스(Commonwealth)입니다.
코먼웰스는 영어에서도 여러 용례가 있잖아요.
영연방도 코먼웰스라고 부르죠.
박사님, 홉스가 말하는 코먼웰스는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요?
권박사
홉스 시대 영국에서, 오늘날 우리가 ‘국가’로 번역하는 state 대신에 쓰였다고 보면 가장 이해가 쉽습니다.
전학사
『리바이어던』에서도 코먼웰스가 계속 언급되는데,
국가와 정부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리바이어던』 2부에서 코먼웰스를 본격적으로 말하죠.
“자연법이 있음에도 어떤 권력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또는 세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하지 않으면
인간은 모든 타인에 대한 경계심에서 자신의 힘과 기량에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히 강력한 힘을 가진 코먼웰스가 필요하다.”
저는 이게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말하려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계약으로 코먼웰스를 만들어낸 다음,
인간은 자기 자신보다 더 뛰어넘을 수 있는 권력을 코먼웰스에게 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연권을 지킬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권박사
계약에 따라 코먼웰스, 즉 국가가 수립되면 자연법은 성문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성이 발견한 자연법이 글로 정리되고 강제력을 갖게 되면, 그게 시민법이 되는 거죠.
홉스는 자연법을 19번째까지 열거합니다.
들으면 “이게 자연법이야?” 싶은 수준의 항목도 많아요.
예를 들어 제4의 자연법은 이런 겁니다.
“타인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베푼 사람이 그 호의를 후회할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사회생활 속에서 배우는 도덕 같은 것을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거죠.
국가가 수립되고 자연법이 성문화되면 시민법이 되고,
국가가 형성된 뒤 개인들의 자연권이 이양되면서
한 사람 혹은 복수의 주권자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주권자가 만드는 법은 시민법에 계속 추가됩니다.
전학사
저는 커먼웰스의 성문화 과정을 보면서 <함무라비 법전>이 생각 났습니다.
기원전 1755년부터 1750년경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이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보다 앞선 기원전 21세기 우르 제3왕조의 <우르남무 법전>이 1951년 발굴되면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 타이틀은 넘어갔지만, 내용 면에서는 여전히 기념비적이죠.
<함무라비 법전>에서 널리 알려진 문구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보복의 범위를 무제한으로 확장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원리입니다.
야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피해자가 당한 손해와 같은 정도를 가해자도 치르게 해서
보복이 끝없이 번지는 걸 막는다는 의미에서는 합리적 구석도 있습니다.
그리고 홉스는 주권이 한 사람에게 있느냐,
소수에게 있느냐, 다수에게 있느냐에 따라 정치체제를 분류하죠.
한 사람이 가지면 군주정, 소수가 가지면 귀족정, 다수가 나눠 가지면 민주정.
그리고 홉스는 평화를 유지하는 효율성 측면에서 군주정을 선호한다고 말합니다.
권박사
홉스는 이렇게 봅니다.
군주정에 대한 비판은 귀족정에도, 민주정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는 자연권이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에게 양도되었다는 점에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사이에 원리적 차이가 크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군주정을 독재라고 비난하면,
민주정에도 비슷한 비난이 적용될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효율성 관점에서는 군주정이 평화 유지에 더 낫다고 보는 겁니다.
전학사
『리바이어던』에서 주권자와 평화의 관계를 다루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주권자는 전쟁과 평화를 도모할 권리를 갖는다.
공공의 이익이 되는 시점을 판단하고,
병력을 결집하고 무장하는 방법과 예산을 판단할 권력이며,
그 비용을 국민에게 세금으로 걷을 권리이다.”
또 이런 말도 하죠.
“누가 군대의 사령관이 되든지 언제나 주권을 지닌 자가 최고 사령관이다.”
권박사
『리바이어던』 18장에 주권자의 권리를 정리한 장이 있습니다.
첫째, 국민은 통치 형태를 변경할 수 없다.
둘째, 주권은 박탈할 수 없다.
셋째, 다수에 의해 선포된 주권 설립에 항의하는 것은 불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현대 민주주의와 크게 갈립니다.
넷째, 주권자의 행위를 국민이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다섯째, 국민은 주권자의 어떤 행위도 처벌할 수 없다.
즉, 탄핵 같은 건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겠죠.
여섯째, 주권자는 평화와 방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한다.
주권자를 비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보면,
사상 검열의 논리가 뒤따라오기 쉽습니다.
홉스도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합니다.
전학사
홉스는 각종 사상에 대해 공부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특히 그리스와 로마 시대 학문을 경계하죠.
그 시대는 민주정이 주류였고,
민주정은 시민의 비판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니까요.
또 홉스가 선호하는 군주정을 민주정은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와 로마 학문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권박사
일곱째, 국민이 빼앗을 수 없는 불가침 권리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기 위한 규칙을 제정할 권리.
여덟째, 모든 분쟁을 심리하고 결정할 권리.
아홉째, 전쟁과 평화를 도모할 권리.
열째, 평상시와 전쟁 시를 막론하고 고문관이나 장관을 선임할 권리.
그리고 상벌권, 재량권, 작위와 서열을 결정할 권리 같은 것들이 이어집니다.
핵심은 “주권은 분할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삼권분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 다음 편 예고
여기서부터 홉스는 현대 정치로 곧장 걸어 들어온다. ‘주권의 이분화’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