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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리바이어던 (9)

자연법 : 생존을 위한 의무의 설계도

by 전학사

전학사


인간은 이 계약을 통해 권리를 이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권리의 이양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자연법’이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긴장이 하나 생깁니다.
인간은 평화를 위해 어느 정도 자신의 자연권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권의 핵심은 원래 “서로의 생명을 지키는 데에서는 침해할 수 없다”는 쪽이잖아요.

이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모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연권을 끝까지 행사하면 전쟁이 되고,
전쟁을 멈추려면 그 자연권을 스스로 제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연법입니다.


Sanzio_01_Plato_Aristotle.jpg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왼쪽 플라톤은 이데아가 있는 천상을 가리킨다. 오른쪽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이 있는 지상을 가리킨다. 자연법은 고대부터 논의대상이었다.(출처 : 위키백과)




권박사

그럼 홉스가 정의하는 자연법을 먼저 읽어보죠.

“자연법이란 인간의 이성이 발견해 낸 계율, 즉 일반적 원칙이다.
이 자연법에 의해 인간은 그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게을리하는 것이 금지된다.” 자연법은 권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자연법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무를 다룹니다.


전학사


자연권을 마음껏 행사하면 상호 파괴로 가게 되니까,
그 비극으로부터 인간을 구하기 위한 장치가 자연법이 되는 거군요.


권박사

맞습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 14장과 15장에서 여러 자연법을 나열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제1의 자연법입니다.

“모든 사람은 평화를 획득할 가망이 있는 한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화 달성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어떤 수단이라도 바라거나 사용해도 좋다.
이렇게 해서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


전학사


한마디로 말하면, 가능하다면 평화를 선택하라는 겁니다.
그게 제1의 자연법이죠.

홉스에게 평화는 도덕적 이상이라기보다는, 전쟁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제2의 자연법으로 넘어가면, 이제 문제가 하나 더 생깁니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결국 각자의 자연권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점이죠.


권박사


그래서 홉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권을 포기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것이 제2의 자연법입니다.


전학사


즉, 평화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연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이 제한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고요.


권박사


자연권은 포기될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아무 방식으로나 포기되는 건 아닙니다.


전학사

제3의 자연법이 등장합니다.

자연권을 제한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결국 서로 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계약은 신뢰를 전제로 합니다.


권박사


홉스는 이 신뢰를 ‘신의(信義)’라고 부릅니다.
신의로 맺은 계약을 영어로 covenant라고 하죠.

그리고 홉스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covenant를 맺었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이것이 제3의 자연법입니다.


전학사


계약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 평화는 바로 깨질 수밖에 없겠네요.


권박사

맞습니다.

그래서 계약을 지킬 의무 그 자체가 자연법이 되는 겁니다.


전학사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제1의 자연법은 평화를 추구하라는 것이고,
제2의 자연법은 그 평화를 위해 자연권을 제한하라는 것이며,
제3의 자연법은 그 제한을 가능하게 하는 계약을 반드시 지키라는 겁니다.


자연법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전쟁 상태에서 인간을 꺼내기 위한 생존을 위한 의무의 설계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 다음 편 예고

계약이 반복되고 제도로 굳어지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인공물을 발명합니다.

그 이름이 바로 코먼웰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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