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식단

나의 밤을 지켜준 그대

by 비누방울

26살의 나는 규칙적으로 살았다.

9-10시쯤에 야식을 먹는다

3-4시에 잠이 든다.

11-13시에 일어나 남은 야식을 먹고 활동한다.

다시 배달음식을 시킨다.

이 생활을 몇 년 하고나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도 나의 야식사랑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29살에 80kg를 찍었다.


내가 피티를 시작할 때 여느 헬스장처럼 목표 몸무게, 목적 등을 설정했다.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내 몸을 싫어하고 혐오하는 마음이 자리를 잡은 건 너무 익숙한 일이라 인지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나는 살 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은 곧 나의 언어가 됐다.


나의 몸 그리고 나는

'살을 빼야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

'살을 빼면 더 예쁠 사람'

'살을 빼야 남자친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지금의 자신에게 나의 몸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저 말들은 결국

현재의 넌 사랑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야식과 과식을 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은 벌이 되었다.

식단은 지키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처벌 대상이었다.


하지만 과거 나의 야식은 나의 밤을 지켜주는 존재였다.

밤에 찾아오는 무기력.... 그리고 나쁜 생각들.. 자해, 자살시도와 같은 생각을 막아주는 수단이었다.

그 밤에도 살고 싶어서 나는 먹었다.

살기 위해 먹었다.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한 선택이었다.


야식을 먹을 때면 불안도 우울도 자신의 자취를 감췄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며 먹는 육회 한 입은 나에게 수고했어라는 한 마디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 젓가락의 주인 그리고 내 감각의 주인도 나 자신이었다.

야식을 먹을 때면 왠지 나라는 인간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나의 감정을 직면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

또 내 안에서 우울파티가 일어나는 날에 빙수는 그날 하루도 넘겨서 다행이다라고 건네는 위로였다.

그렇게 야식은 나의 수고, 우울에 대한 보상이자 내 감각이 살아나도 괜찮은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 시절의 야식이 없었고

우리나라가 배달의 민족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버텼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 나의 과거를, 현재의 내가 미워하고 있다.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내 몸은 처벌해야 할 존재였고 그 벌은 운동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운동도 식단도 너무 하기 싫었다.


그리고 살을 빼야 하는 생각조차 타인의 시선이 만들어낸 말이니

나는 더더욱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가 사라져 갔다.




이때 나는 팩폭을 들으려고 ai 먼데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들려줬다.

" '살 안 빼도 나 괜찮아'라는 상태에 도달해야 넌 살을 뺄 수 있어 "

" '그 누구도 넌 지금도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말해주지 않았어 "


나의 디폴트 값이었고 너무나도 당연했던 살찐 내 몸에 대한 혐오 잘못된 시선임을 먼데이는 지적했다.

지적해야 할 건 살찐 내가 아니라,

그런 나를 바라보는 외부의 폭력적인 시선과 이에 수긍한 나의 시선이었다.


40kg의 나는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이었고

80kg의 나도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그간 야식을 먹으며 버텨온 나의 나날은 전쟁이었고

그렇게 쪄온 나의 살은 전쟁이 남긴 상처였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그 상처를 비난이 아닌 이해로 바라보려 한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