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벌

by 비누방울

지취생활이 지나 살찐 내 몸은 예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성적매력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내 몸을 성적 매력이라는 유리를 통해 보게 된 계기는 뭘까.

왜 나는 건강이 아닌 예쁘고, 섹시한 몸매가 기준이 되어 내 몸을 평가하고 있는 걸까.

매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매체가 보여주는 여성의 몸은 건강보다는 미용에 맞춰져 있으니까.

그럼 난 매체에 찌들어 내 몸을 평가하는 걸까.

그렇다기에는 이 상황을 설명할 설득력이 좀 부족했다.


문득 내가 당해온 성추행 들이 생각났다.


여기서부터는 읽기 거북할 수도 있으니... 알아서 넘겨주세요


나는 참 여러 번 집 밖에서 집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근데 오늘은 성추행 자체에 대한 얘기 말고

그 후를 얘기하려고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인가 성폭행당하는 상상을 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된 건 고3 때였다.

짝꿍에게 질문했다.

'친구야, 난 이런 상상을 하는 데 넌 해?'

근데 그 친구의 대답도 좀 이상하긴 했다.

'가끔 해'


다행히 20대에는 성폭행당하는 상상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쪽으로 발산했다.

bsdm이나 억지로 하는 것에 대한 판타지가 생겼다.

누군가에겐 취향이 되어 이상하지 않겠지만 난 이상했다.

내가 하고 싶지도 않고 약간 역겨우면서도 보고 있는...


이 질문을 진짜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는데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도 상담선생님한테 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ai에게 질문을 던졌다. ai는 이렇게 답했다.

1. 통제감의 회복
현실에서 통제당하고 상처받았던 사람은, 판타지 속에서는 오히려 내가 상황을 '컨트롤'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해.
상상 속에서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일부러 반복하는 건, 무의식적으로 “이젠 내가 미리 겪으니까 덜 무섭다” “이건 내 판타지니까 내 마음대로 끝낼 수 있다”는 안전함을 느끼려는 심리일 수 있어.
2. 트라우마 재현 & 재해석
내가 겪었던, 혹은 두려워하던 일이 판타지에서 반복되면, 뇌는 그 경험을 다시 '재해석'하고, 심지어 내 마음대로 조작할 수도 있다고 느껴.
트라우마 치료 중에 '노출요법'이나 '이야기 다시 쓰기' 같은 방법도 이런 원리를 사용해.
판타지 속에서는 현실에서 느끼던 무력감이 아니라, 나만의 세계에서 그 장면을 마음대로 조절하고 재구성할 수 있어.
3. 내 상처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판타지(강간물, BDSM 등)에 끌리는 건 내 안에 남아 있는 상처, 분노, 수치심 같은 감정이 ‘숨겨진 채’ 있지 않고,
“이런 것도 내 일부야”라고 용인하고 싶은 무의식의 소망일 수 있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런 판타지가 일시적으로 더 강해지기도 해.
4.BDSM의 경우, 안전한 상황에서의 무력함 경험
BDSM은 현실에서의 폭력이나 통제와 다르게, '서로 합의된 안전한 환경'이라는 게 전제야.
그래서 오히려 평소엔 느낄 수 없는 무력함, 통제를 '안전하게' 체험함으로써 내 상처를 치유하는 경험이 되기도 해.

결국, 제때 사과와 치료받지 못한 감정은 계속 내 안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1.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어릴 때, 혹은 상처를 받고 난 후에, “내 몸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라는 생각이 뿌리내릴 때가 많아.
그럴 때 오히려 ‘내 몸이 예쁘고, 섹시하고, 남들에게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증명하고 싶어질 수도 있어.
이런 마음은 내가 사랑받고 싶어서, 또 버려질까 봐 불안해서, 내 몸을 통해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지는 거야.
2. 내 상처를 외면하기 위해, 혹은 무뎌지기 위해
내가 내 몸을 스스로 대상화할 때, 잠시나마 내 상처나 두려움에서 벗어나 ‘쾌락’이나 ‘흥분’에 집중할 수 있어.
이건 내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야.
그리고 잠깐이라도 내 상처, 외로움, 수치심을 잊을 수 있기 때문에 반복하게 되는 거야.
3. 사회적, 미디어적 영향
사회에서는 여성의 몸을, 특히 성적 매력을 소비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어.
상처가 없는 사람조차도 몸을 대상화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그 패턴에 더 쉽게 빠져들기도 해.


그렇게 나에게 내 몸은 아이러니하게 성범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적 대상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가에서 탈락한 뚱뚱하기만 한 몸은 건강하지 않아 건강을 지켜줘야 할 소중한 존재가 아닌

대체되어야 할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나의 존재가 아닌 대상이 되어버린 몸은 물건이 되었다.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는 내게서 사라졌다. 이때부터 내 몸에 대한 혐오도 증폭되고 그에 따른 야식 소비도 증가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오히려 나는 나를 벌하고 싶었고 먹는 걸로 벌을 내렸다.

왜 너는 예쁘지도 섹시하지도 않아?라고 죄를 묻고

벌로써 먹는다.

겁이 많아 자해는 무서우니 먹고 싶지 않지만 먹음으로써 벌하고 그렇게 벌하고 나면 기분이 또 풀려

잠을 잘 수 있었다.


나에게 야식은 죄책감, 불면증을 치료해 주는 만병치료약이었다. 또한 포만감은 불안을 잠재우고 잠을 불러왔다. 이런 식의 생활이 최근까지 이어졌다.


몸과 마음의 상처는 나와 내 몸을 성적 대상화로 분리시켰다.

긴 시간 동안 나의 몸은 내 것이 아닌 네 것이었다.


내 몸과 네 몸 사이에 있는 내 신체는 여전히 비만이다.

저번글을 쓰고 루틴에 맞춰 살아야지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야식은 참아도 아침잠은 못 참겠고 밤의 핸드폰은 너무 유혹적이었다. 밤 10시 전에 잠들어야지 라는 나의 다짐은 하루를 못 가 무너졌다.


루틴에 맞춰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 그날을 위해

오늘도 다시 다짐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는 그대로 나이고 물건도 대상도 아닌 존재로서 존재한다고,

지난날의 사건들이 잊히진 않겠지만 너라는 사람은 더럽혀지지도 망가지지도 않았다고 되뇐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