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 과소비와 감정 그 은밀한 삼각관계

by 비누방울

최근에 병원에 갔을 때 나의 무지막지한 소비습관에 대해 고민이 있다고 얘기했다.

나는 정말 돈을 막 쓴다.

진짜.



돈은 없고, 더 이상 쓰면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걸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카드를 긁는다.




이런 나의 습관이 당연히 부모님께도 도움이 되지 않고 특히 앞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나에게도 정말 나쁜 악습이기 때문에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 얘기했다.



선생님은 몇 가지로 해석해 주셨다. 나는 2가지 밖에 기억이 안 나지만.

1. 감정의 분출

참아왔던 감정을 그 순간에 쏟아내는 배출구의 역할을 한 다는 것이다.

2. ADHD

감정, 특히 충동적인 감정이 들 때 컨트롤을 못한다는 얘기여서 adhd의 가능성도 말씀하셨다.

하지만 6개월간 나를 지켜본 지금 상태로서 adhd일 가능성은 50% 이하라고 말씀하셨다.




정신과를 나와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직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야식을 먹을 때 소비를 할 때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이거라도 스스로에게 해줘야지'
'나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소비를 할 때는 지금 당장 없으면 안 되는 품목을 사지 않는다.

야식을 먹을 때는 너무 배가 고파 먹지 않는다.

감정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고, 소비한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느꼈다.

나는 자존감이 낮고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행동한다고.

근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야식과 소비는 채우기보다 분출에 가까웠다.

하루 종일 참아왔던 감정표현을 유일하게 허락하는 순간이 나에게는 소비와 야식이었다.




힘든 하루의 끝에 야식을 먹으면서 나 자신을 달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며 나의 낮은 자존감을 채웠다.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내보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계속해서 참은 감정들을 유일하게 허락하는 순간이니 나도 이성이 마비되며

스스로 행동을 억제하지 않았다.

나를 관리하지 않는 순간들이다.



지금 나의 야식과 과소비 습관은 조금 나아졌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나 스스로에게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 일 열심히 했어. 스스로가 뿌듯해'

'짜증 나 별로 안 보고 싶은 사람들인데, 집에 가고 싶다'

등 어떤 감정이든 일단 말하고 평가하지 않고 있다.


예전 같으면 억누르기 위해

'일을 잘하는 건 알 수 없는 거야 남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 몰라' 등

이런 말들을 하며 내 감정을 평가하고, +이면 0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감정을 받아들이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는 이제 더 이상 불안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고 말이다.

지금의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그런데 눈물이 나왔다.

현재의 이 평범한 감정을 위해 그동안 싸워온 내 모습이 그제야

나의 과거로, 나의 삶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남의 일처럼 여겨졌던 나의 지독하고 고요한 싸움이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의 전쟁처럼 여겨졌다.

그 전쟁이 끝난 자리는 비록 아름답진 않지만 고요가 찾아왔다.

고요 속에서 나는 드디어 내 삶과의 싸움이 일단락 됐음을 느꼈고



안도, 힘듦, 위로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이젠 이 고요를 지키는 것이, 앞으로의 나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