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통증
무기력이라는 펜스를 넘자 현실이 나왔다.
오랜 시간 고립을 지키던 나는 현실에 반만 발을 걸치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몸이 아파서 웨이트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불균형인 골반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고 이를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얘기했다. 선생님은 지금 웨이트는 무리고 교정운동을 하며 식단을병행하자고 하셨다. 아무래도 눌리는 하중이 덜어지면 덜 아픈 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니까.
그동안 운동할 때는 여러 번 피티를 받았으나 식단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운동하니까 밤에 더 먹었다. 하지만 이번에 할 때는 식단을 내가 먼저 시작하자고, 식단을 구성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 지키고 있다. 야식을 먹거나 다른 맛있는 음식에 대한 유혹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
즉, 나의 보상 심리가 줄어들었다. 나의 공허함에 대해 채우려는 욕구가 줄어들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식단 아까운데 왜 먹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음식을 먹는 게 날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도 같이 든다.
더 이상 음식은 감정을 위한 소모품이 아니게 됐다.
나에게 음식은 그 자체로 분리되었다.
나의 무기력의 바깥에는 현실이 있었고
그건 참 매서웠다.
살을 빼고 몸이 아파진 거로 현실을 느꼈고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살 하나만 따지면 식단으로 책임지면 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더 거대한 문제 같다.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아무도 내가 그동안 ‘그냥’ 존재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는 건 모르고 왜 지금의 넌 아무 생각 없이 사냐는 말만 들으니까 말이다. 근데 어느 밤인가 문득 그건 내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고 미래도 내가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마음에 닿았다.
앞으로는 무슨 직업을 가질지,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다. 작년 이맘때의 난 내가 계속 메이크업이라는 직업을 갖고 갈 줄 알았다. 올해 초의 난 대학을 다시 가려고 준비했다. 결국 지금은 아르바이트 중이다.
뭐가 쳘쳐질지는 모르지만 이젠 눈 감고 스스로를 모르는 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눈을 떴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