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테두리
나는 ‘안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왔다.
그 테두리는 소비와 무기력이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무기력은 나를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든다.
스스로 무력하다고 믿으며, 이것저것 시도하지 않고
주어진 일만 하다 보면 시간은 그저 흘러간다.
그러다 일을 맡긴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 칭찬 속에서 나를 확인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착각 속에 잠시 안도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흐름을 내버려 두는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인생인데, 어쩐지 주도권은 나에게 없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어딘가 어긋난 기분이다.
이건 아마 내 통제적인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통제 욕구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무기력’이라는 안전바 안에 가둬두었는지도 모른다.
물 흐르듯 사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반대로, 자기 주도적인 삶만이 정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요즘 나는 내 인생에 ‘내가 없다’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억지로 나를 지운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작은 울타리 안에 가둬버린 것 같다.
예전에 대학에서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린 코끼리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면,
그 코끼리는 나중에 커서 힘이 세져도
그 쇠사슬을 벗어나지 못해요."
그리고 덧붙이셨다.
"~~ 씨는 꼭 밤이 되면 스스로 그 쇠사슬을 다시 걸어 잠그는 것 같아요."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완전히 사회생활이나 경제활동을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마치 “난 아무것도 못해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오랫동안 나는 이 무기력을 미워했다.
"내가 무기력하지 않았더라면, 우울증도 없었을 텐데..."
그리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걸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 못한다고 믿었다.
무기력은 나에게 척결 대상이었다.
그러다 무기력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나를 지켜줬기 때문이다.
과거, 행동의 측면에서는 나를 지켰다고는 못하겠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면 나는 혼나지도 미움받지도 않아, 즉 타인의 미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러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라는 마음은 점점 발전했다.
결국,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이 됐다.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가끔 내 안의 내가 폭발적으로 뛰쳐나와 버리면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긴 했다. 지난 직장이 그랬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무력함은 튀어나온 주도적인 나를 잡아먹기도 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나를 온전히 지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은 지켰다고 믿는다.
과거의 나는, 너무나 아팠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모든 상처가 끌려 나와 덧나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의 방어라고 믿었다.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혼나지도, 미움받지도 않을 수 있었기에
나는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점차 습관이 되었고, 결국 삶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이 나를 온전히 지켜준 건 아니었다.
내 안에 갇혀 고립된 시간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라도 마음을 지켜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기력이 나를 지켜준 울타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무기력을 미워하기만 했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쇠사슬을 풀 수 있다는 걸 안 지금의 나는,
그 너머의 길을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