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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Mar 03. 2024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세상

어느 순간부터 내게는 기억이라는 것이 아주 희미하게만 남아있었다. 아니 희미하다는 말조차도 거창한 수식어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일부는 왜곡되어 있거나 일부는 조각조각 나버려 이어 붙일 수 없거나 그것도 아니면 중간중간 끊어져서 사라져 버렸다. 내게 기억이란 그리고 내 삶이란 시간이 만들어주는 연속성을 갖지 못한 채,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점들처럼 불연속적으로 끊어져버렸다.




어느 봄날, 가만히 창 밖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일기를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쓰면 적어도 불연속적으로 떨어진 혹은 사라지는 기억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일기를 쓰는가 보다. 하지만 나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는, 일기를 쓴다 해도 얼마 못 가 다시 원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만약 내가 그토록 성실한 사람이었다면 내 기억이 사라질 일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한 포털사이트에서 작은 카메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너무나도 작은, 한 손에 들어오는 그 카메라를 갖고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는, 그래서 그 사진들을 일기 대신 남기면 그 당시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잊는 일은 없을 테니 그 아니 좋겠는가. 그러지만 내게는 그 작은 플라스틱 카메라 하나를 새로 살 경제적 여유조차 없어서 한 중고 사이트에서 내가 수중에 갖고 있는 비상금 안에서 해결하고자 기다렸고, 끝내 모서리가 부서져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온 녀석을 받아 볼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을 받아 들고 가까운 사진관에서 필름 한 롤을 구입하여 내가 가보고 싶었던 큰길 건너의 골목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어릴 적의 나를 닮은 친구들을 만났고, 가로등을 보았으며, 내 감정이 고스란히 이입되는 자전거에 시선이 갔고, 그 짧은 여행의 끝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어둑해질 무렵은 어릴 적, 나를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고 떠오르게 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나를 꼭 닮은 친구가 내 곁에 있었으니
자전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상 중에 하나, 그들은 늘 고독해 보인다.




찰칵도 아닌 틱 소리와 함께 찍히는 작은 카메라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같아만 보이던 지루한 일상도, 매일 새롭게 느껴지고 소중해졌다. 삶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영화 속 장면처럼 다가오고 내 정서도 조금씩 풍요러워졌다.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삶은, 매일은 다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색색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것을. 이 책의 사진들은 우리가 매일 보는 일상을 찍은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매 순간 반복되는 장면들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나는 그것이면 내가 사진을 찍어온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부디, 이 짧은 책 속에서 다채로운 그래서 조금은 달라진 시선으로 세상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년 3월 3일


글, 사진 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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